목양수필 / 꽃길을 만든 사람

‘꽃길만 걸으세요’ 이 말은 주로 결혼식을 앞둔 신랑 신부에게 건네는 덕담입니다. 하지만 이 말 같지도 않은 말은 건넨 당사자도 믿지 않고 듣는 대상도 믿지 않는다는 것을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입 밖으로 나가는 순간 곧 부도날 이 덕담을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주고받는 것이죠. 그런데 아세요? 정말 꽃길을, 그것도 거의 365일 걸을 수 있는 꽃길이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우리 교회당 1층 로비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왼쪽 언저리에 일렬로 놓인 제라늄 화분들이 바로 그 꽃길이랍니다. 과거에 그 꽃이 없었을 때는 계단을 오르는 일이 의미 없는 중력 거부 활동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꽃이 자리 잡은 이후로 그곳은 천국에 이르는 계단처럼 오르는 이들을 무중력의 세계로 날아오르게 했습니다.

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가꿈의 주인공은?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바로 김은희권사님이십니다. 이태 전이었던가? 처음에 제라늄 화분 몇 개로 시작하실 때만 해도 그저 예배당의 많은 화분들 가운데 귀여운 화분이 더해졌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거의 매일 아침마다 물주고, 시든 꽃잎 떼어내고, 분갈이에 새로운 종자 이식까지 하면서 꽃길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김권사님은 매일같이 새벽기도가 끝나면 겸손히 허리를 숙이고 온갖 정성을 쏟아 부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다하시는 김권사님을 바라보며 제 아내가 제게 말했습니다. “아무래도 저 꽃들에 김권사님이 자식들을 위한 기도를 담고 있나 봐요.” 그 말에 제가 동의하며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 딸의 눈물이 제라늄 꽃으로 피어나고 있습니다. 부디 형규와 태규를 굽어 살펴 주옵소서!’

이 꽃길이 늘 꽃길만은 아니었습니다. 유난히 무더웠던 작년 여름, 유리창으로 투과되어 들어오는 뜨거운 태양 볕을 못 이긴 제라늄 대부분이 녹아내리고 만 것입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우리의 꽃길이 자갈길이 되어 사람들은 다시 타일 깔린 시멘트 계단을 오르내리고 있을 때, 김권사님의 생각은 여전히 제라늄 가득한 꽃길을 꿈꾸고 계셨나 봅니다.

지난겨울부터 재개된 김권사님의 눈부신 열심이 초봄부터 붉고 고운 꽃으로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디서 구해 왔는지, 외우기도 벅찬 다양한 이름의 제라늄 꽃들이 계단 언저리를 빼곡히 채워가기 시작하더니 창틀에 걸면서까지 그 영역을 공중까지 넓혀갔습니다. 마치 예배를 드리러 오는 이들의 눈에 남아 있을 세상의 잔상을 지워내고 거룩하신 주님을 뵈올 수 있도록 안구를 정화시키기라도 하듯 말입니다.

요즘엔 김권사님이 새로운 발상을 하고 있습니다. 화분들을 난간에 매달아서 공중정원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미 위쪽 구석진 부분에 철망 바구니를 설치하고 제라늄 화분을 담았더니 보는 즐거움의 질량과 부피가 배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바깥 코너 진 곳에는 앙증맞은 화분이 얹힌 조그만 탁자와 의자 두 개가 놓여 있습니다. 우리 예배당 중에 가장 핫(hot)한 그곳에 낯선 사람을 초대하여 차를 마시며 복음을 전하면 그 마음의 문이 쉽게 열릴 것 같다는 생각은 목사만의 착각일까? 아무튼 우리 모두에게 보는 즐거움을 선물해 주신 김권사님께 고맙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그리고 부디 손으로 하는 마음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기를 마음 모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