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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복이 될지라
2021-02-06 22:54:26 강동열목사 50  

 

너는 복이 될지라

창세기 12:1-6

예전 이때쯤이면 집집마다 복 조리개를 대문 입구에 걸어서 복을 골라 담고자 했습니다. 심지어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임에도 복이 쏟아지라는 의미로 ()’ 자를 거꾸로 매달아 놓은 것도 모자라서 숫자8을 좋아합니다. 돈을 ‘’벌어들이다""자와 발음이 같아 8자를 무지 좋아하는데, 전화번호에 8자가 4개 이상 들어가고, 자동차 번호에 8자가 많이 들어가는 번호는 높은 가격에 낙찰됩니다. 베이징 올림픽도 200888일 저녁88분에 개막했을 만큼 미신을 좋아합니다.

()이란 한자어 = ‘’ + ‘’ ‘’ + 즉 한 입이 밥을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밭이 있으면 복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오복도 그와 궤를 같이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는 오래 사는 것, 곧 수() 복이고, 그 다음은 물질적으로 넉넉하게 하는 부귀(富貴)입니다. 셋째는 건강하고 평안하게 사는 강녕(康寧)의 복이요, 넷째는 덕스러운 인간관계와 가정을 의미하는 유호덕(攸好德)입니다. 마지막 복이 대단히 중요한데 고생 안하고 죽는 고종명(考終命)의 복을 통칭하여 오복이라 합니다.

그럼 성경의 복은 어떤 뜻일까요? 오늘은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으로 불렸던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에 대하여 살펴봄으로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복의 의미가 어떤 것이며 그 복을 받는 믿음의 사람들의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살펴봅시다.

A. 하나님의 부르심과 아브라함의 떠남(1)

먼저, 성경의 복된 인생은 믿음에서 시작되며 그 믿음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부터 시작됩니다.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인생들에게 복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우리에게 거부할 수 없는 명령으로 다가옵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강권함이요,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의지가 담긴 부르심입니다. 그래서 어떤 설교자는 부르심이란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calling’이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pulling’(잡아당기심)이라고 했습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것처럼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의 가정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고향인 갈대아 우르를 떠났지만, 중간 지점인 하란에 머물러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11:31)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공교롭게도 그 도시의 이름이 데라의 죽은 아들 하란과 똑같았습니다. 데라가 그곳에 오래 머무른 이유가 아들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관련이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하란교차로라는 뜻을 가지고 있을 만큼, 낙타를 모는 대상들이 지나가는 교통의 요지이기도 했습니다. 그 유명한 실크로드가 하란을 경유해서 터키를 지나 유럽으로 향했습니다. 하란은 경제의 발달로 인해 갈대아 우르와 문화가 비슷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데라는 그 친숙한 문화권을 떠나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재차 그에게 떠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축복을 향한 믿음은 분명한 분리를 요구합니다. 그 이유는 믿음의 삶이란 우주의 창조자이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인생의 참 주인이 되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각이나 주변 사람들의 견해, 시대적 상황에 의해 좌우되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믿음은 거룩한 분리를 요구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죄와 분리되어 믿음으로 거룩한 길을 가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죄악 된 세상으로부터 떠나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바라볼 때 비로소 전능자께서 덮어주시는 축복의 그늘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직도 떠나지 못한 죄가 있다면 지금 당장에 떠나십시오. 그게 거룩한 출발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볼 것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목적지를 구체적으로 알려주시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저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만 하셨습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은 낯설고 물 설은 머나먼 길을 떠나면서 목적지도 모르고 출발했던 것입니다. 이는 믿음의 미래를 살아간다는 것은 한 걸음 한 걸음을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실 것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끔 성도님들 가운데 저를 당황하게 만드는 분들이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미래를 확실하게 가르쳐 주시면 좋겠는데, 자기는 잘 모르겠으니 기도 많이 하시는 목사님께서 하나님께 물어서 좀 가르쳐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러면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 것은 돗자리 까는 사람들이나 하는 행위이지 믿음의 사람이 할 일이 아닙니다. 저도 저의 미래를 잘 모릅니다. 그저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장차도 인도하실 줄 믿고 믿음으로 한 걸음씩 순종하며 나아갈 뿐입니다. 그렇게 했더니 하나님께서 복된 길로 인도하셨고, 장차도 그렇게 하실 것을 저는 믿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일부 그릇된 여론 때문에 예수 믿는 것이 어리석은 일처럼 호도되는 세상 속에서 믿음 생활하기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안 계시는 것도 아니고, 진리가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이 없을지라도 세상 가치관에 흔들리지 말고, 복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거룩한 분리의 삶을 새롭게 시작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B. 복을 약속하신 하나님(2-3)

하나님은 본토로부터, 친척으로부터, 아버지의 집으로부터 분리하라는 당신의 명령에 순종하면 그에 대한 보상으로 상상할 수 없는 복 내려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12:2-3) “(2)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 말씀에는 이라는 단어가 다섯 번이나 등장합니다.

인간은 사람의 힘으로 복을 만들어 낼 수 있고, 하늘로부터 복을 끌어내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주에 한 유튜브 채널을 통해 KBS 다큐 하나를 시청했습니다. 오래 전에 제작한 것으로 보이는 카메룬 캅시키족의 한 추장 코지마사에 관한 스토리였습니다. 해발 2000m의 고원에 그는 아내 6명을 거느리고 살고 있는데, 첫째와 넷째는 상당한 비용에 해당하는 가죽을 지불하게 데려왔고 나머지는 남편을 잃은 과부들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첫째와 젊은 넷째 부인은 실수를 해도 관대했지만, 다른 부인들이 잘못하면 매로 때린다고 했습니다. 남자는 목축하는 일을 했고 여자들은 밭에서 농사일을 했습니다. 흙벽돌집에 거주하면서 여자들은 음블레라는 납작 둥그런 돌을 자신들의 수호신으로 섬겼습니다. 하지만 여섯째 부인이 아파서 일을 못하자, 추장이 닭 한 마리와 약간의 곡식을 가지고 무당을 찾아가서 복을 빌고는 매우 중요한 질문을 하나 했습니다. 그 내용은 내가 장가를 한 번 더 갈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 부족들은 여자를 8명 두어야 복이 있다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복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본문에 기록된 의 히브리어는 베라카인데, 무릎을 꿇다, 축복하다(복을 주다), 찬양하다라는 뜻의 바라크에서 유래했습니다. 기본적으로 바라크는 '유익한 능력을 부여하다'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에서 '축복한다'는 것은 '성공, 번영, 생산, 장수 등을 위한 능력을 부여하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2-3절에 나타난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크게 두 단계로 요약됩니다. 첫 번째 단계는 아브라함을 크고 강대한 민족으로 세우고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모든 민족이 아브라함을 통해 복을 받는 것입니다. 이 둘을 요약하면 아브라함이 먼저 복의 수혜자가 되고 크고 강대한 민족을 이룬 후에, 그 민족을 복의 전달자로 사용하셔서 모든 민족과 열방에게 그 복을 나누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구체적인 복의 내용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큰 민족을 이루어 주시는 것이고, 둘째는 가나안 땅을 주시는 것이고, 셋째는 복의 근원이 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실제로 창세기 12장 이후 나타난 아브라함의 삶을 보면 이 모든 복이 그대로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은 점점 부강해졌고, 25년 만에 자녀도 얻었습니다. 그가 그러한 복을 받은 것은 그의 삶이 훌륭했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선택을 받아 그 도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2-3절 말씀에 하나님께서 내가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만이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바라크하십시오. 복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 앞에 기도의 무릎을 꿇고 그분을 붙잡으십시오. 복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 앞에 경배하며 예배하십시오. 그리고 복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그 이름을 찬양하십시오.

복은 복을 바라보는 자에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복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을 붙좇고 기도하는 자, 그분을 경배하고 예배하는 자, 그분께 모든 영광을 돌리는 자에게 하나님을 복을 주십니다. 이런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C. 마침내 가나안에 들어간 아브라함(4-6)

2절부터 3절에 이르는 복에 대한 약속의 말씀을 받은 아브라함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믿음으로 순종한 것입니다. (12: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고 축복의 샘이 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축복의 말씀을 들었다고 할지라도 아브라함이 그 말씀을 따라 가지않았더라면 그의 아버지 데라와 같이 미완의 삶의 되고 말았을 것이요 오늘날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그런 아브라함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4절 초반은 아브라함의 생애 가운데 가장 중요한 행동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갔고, 그의 조카 롯은 삼촌 아브라함을 따라 나섰습니다. 롯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습니다. 단지 족장 시대에 그를 보호할 사람이 필요했고 그래서 아브라함을 따라나섰습니다. 그런데 이게 훗날 그의 인생에 그렇게 큰 불행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눈에 보이는 것만 좇다가 소돔과 고모라 땅을 선택하였고 결국 그 성이 죄악으로 하나님의 불 심판을 받을 때 모든 것을 잃고 말았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날 때의 나이가 75세였습니다. 아무리 장수하던 시대라 할지라도 늦은 나이임이 확실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떠났습니다. 인생에 하나님을 믿기에 너무 늦은 나이는 없습니다. 인생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에 너무 늦은 나이도 없습니다. 믿음으로 결단하고 순종할 때가 가장 빠릅니다. 올해 102세를 맞이하신 김형석 교수님도 인생에 가장 행복할 때가 60이 넘어서 특별히 봉사활동을 시작하면서 가장 깊은 행복을 경험했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읽어보았습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은 하나님 잘 믿기에 딱 좋은 나이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즘이야 이사가 참 쉽지만, 예전에는 이사가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며칠 전부터 짐을 싸서 두고 사람은 그 사이에 처박혀 잠을 자야 했습니다. 사람이 직접 들고 트럭까지 날라야 했습니다. 특히 아파트 옥상에는 곤도라가 있어서 그것에 짐을 싣고 조심스럽게 내리는데, 바람이 불면 줄을 붙잡고 발버둥을 쳐야 했습니다.

오늘날처럼 운송 수단이 좋은 시절에도 이사가 힘들었는데 하물며 지금으로부터 약 4천 년 전, 족장들의 이사는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아브라함 시대에는 수레가 없었기 때문에 사람은 걷고 짐은 짐승에 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아브라함의 순종을 귀하게 평가하는 구절이 나옵니다. 5절 말씀입니다. (12:5)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아브라함은 이전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습니다. 가다가 적당히 물이 넉넉한 곳에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란에서 가나안까지의 약 800km라고 하는 먼 거리를 가고 또 갔습니다. 도중에 레바논처럼 숲이 우거지고 강을 끼고 있는 곳도 있었지만 한 눈을 팔지 않았습니다. 이전에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까지는 유프라테스 강을 끼고 있었고 대상들이 다니는 길이었기 때문에 이동이 수월했습니다. 하지만, 하란에서 가나안까지는 달랐습니다. 주로 양치기들이 다니다가 만들어진 길과 골짜기로 난 길을 가고 또 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가나안 땅이었기에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믿음은 도중에 타협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중에 물러서는 것도 아닙니다. 약속하신 것을 얻기까지 인내하며 약속하신 것을 얻도록 끝까지 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10:36,38) “(36)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 (38)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지금까지 왔는데 혹시 낙심하여 주저앉았습니까? 다시 일어서서 마침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의 땅에 이르기까지 믿음의 경주를 계속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6)

하나님께서 내게 약속하신 축복이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일지라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니 그곳은 가나안 족속이 이미 터를 잡고 살고 있는 남의 땅이었습니다. (12:6)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복은 언제나 작은 것에서 시작하여 점점 확장되어 갑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큰 것, 온전한 것을 주시지 않습니다. 모든 복에는 씨앗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가족은 모든 민족에게 복 주시려는 계획을 이루는 하나님의 씨앗 가족’(씨드 멤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먼저 우리 심령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스림을 받아 순결하고 거룩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성품과 삶의 변화가 진정한 축복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여러분의 가족과 이웃을 복 주시기 위해 축복의 씨앗으로 부르셨습니다. “너는 축복의 씨앗, 하나님께서 만드셨죠. 너는 축복의 씨앗, 하나님께서 심으셨죠. 너로 인해 주님의 사랑이 싹 트이고, 아름다운 믿음 나무 자라며, 너로 인해 주님의 축복 열매 맺으며, 아름다운 향기를 나누리.” 이런 축복의 씨앗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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