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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람의 특징
2021-02-13 23:28:56 강동열목사 33  

 

하나님의 사람의 특징

창세기 12:10-20

먼저 짧은 동영상을 하나 시청하시겠습니다. (동영상) 저희 내외는 지금도 이 말도 안 되는 영상을 시청하며 행복해 합니다. 이처럼 어린아이가 태어나서 첫걸음을 내디딜 때 그 부보들은 기뻐하며 축하합니다. 세상에 그런 기적이 없습니다. 그 기적을 목격한 부모는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전하며 좋아합니다. 한두 걸음 걷다가 쓰러진 아이를 비난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이제 한 걸음을 내디뎠다는 것으로 인해 감사하며 앞으로 마음껏 달려 나갈 아이의 모습을 바랄 뿐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의 신앙생활 첫걸음을 그렇게 기뻐하시며 축복하십니다. 지난주일 우리가 배웠던 것처럼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들어온 것은 아이가 첫걸음을 내디딘 것과 같습니다. 즉 마라톤을 할 수 있는 믿음까지는 아직 멀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첫 믿음을 기뻐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믿음이 왕초보였을 때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요? 오늘은 아브라함의 믿음 생활 초기에 있었던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의 특징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A. 예배하는 삶(7-8)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으로 이동했으나 곧 바로 그 땅에 정착하지는 못했습니다. 그곳에는 이미 가나안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기에(12:6), 아브라함은 단지 그 땅을 통과하는 수준에만 머물렀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아브라함이 그 땅을 차지하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당시의 일을 스데반 집사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7:4-5a) “(4)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의 아버지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지금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5)그러나 여기서 발 붙일 만한 땅도 유업으로 주지 아니하시고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가는 곳마다 나타나셔서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아브라함의 반응은 예배였습니다. (12:7-8) “(7)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8)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하나님은 약속을 온전히 이루시기 전에 우리에게 먼저 예배를 요구하십니다. 그래서 삶 가운데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이 되는 것입니다.

동생 아벨을 쳐 죽였던 가인은 하나님 앞을 떠나 성을 쌓았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가는 곳마다 성을 쌓지만, 이런 성은 아무리 높이 쌓아도 불안하기만 합니다. 반면에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와 세겜에 단을 쌓았고, 거기서 남쪽으로 내려와 벧엘과 아이 사이에서도 단을 쌓았고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남쪽으로 내려갔습니다. 왜냐하면 가는 곳마다 원주민들이 자기들의 땅에 아브라함의 거주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아브라함은 북쪽에서 브엘세바를 거쳐 네게브 광야까지 내려가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는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지도).

아브라함의 가나안 초창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여행이었습니다. 고향 갈대아 우르라는 안정된 도시 생활을 떠나 한 번도 살아 보지 않은 낯선 땅, 가나안으로 이주하여 이동하고 또 이동했습니다. 그의 여행은 요즘처럼 볼거리나 맛집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 아니었습니다.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투자 이민도 아니었습니다. 그가 여행하는 오직 한 가지 이유는 하나님의 부르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낯선 여정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친구라는 별명을 가졌던 하나님의 사람 아브라함의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의 크리스천들에게 가장 목마른 단어가 바로 하나님을 마음껏 대면하여 드리는 예배일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사람의 DNA입니다. 저의 딸 예랑이가 고등학교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3학년이 되니까 주일임에도 집에는 안 보내서 제가 담임께 전화를 걸어서 말했습니다. “우리 딸에게 주일 예배는 혈액형과 같은 것입니다. 무조건 보내주세요. 잘 되든 잘 못 되든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랬더니 두말 안고 보내주어서 예랑이 반이 딱 한 명만 집에 왔습니다.

예배가 없는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를 수가 없습니다. 어떤 형편에 처해 있든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로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면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B. 하루아침에 변화되지 않는 성도

그때 그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족을 이끌고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첫째, 내려간 것 자체가 잘못이며 불신앙의 행동이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가정에 큰 고난이 생겼다는 해석입니다. 그 증거로 애굽에 내려간 이후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 거나 혹은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았다는 기록이 없기 때문에 인본주의적인 생각의 결과로 큰 위기가 찾아왔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둘째, 당시 아브라함은 혼자가 아니라 많은 식구를 이끄는 부족 지도자로서 애굽으로 내려간 것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견해입니다. 많은 식구의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애굽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제가 말씀 드리고자 하는 것은 그가 애굽에서 행한 잘못된 행동입니다. 그는 애굽에서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고 위험을 모면하려 했습니다. 그 일로 인해 아내를 빼앗길 뻔했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하나님의 지시 없이 약속의 땅을 벗어난 것이 잘못입니다. 그것은 아직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에서 흉년을 견딜만한 믿음의 훈련이 되지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애굽 사회는 11왕조 시대로 잘 통제된 국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에게까지 안전을 보장하기 어려운 사회 구조였습니다. 이에 불안한 아브라함이 그의 아내 사라에게 말했습니다. (12:11-13) “...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12)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13)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사실 아브라함의 이러한 제안은 완전 거짓말은 아니었습니다. 사라는 아브라함의 이복누이로서 아내가 된 것이기 때문에 절반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이 방법은 아브라함이 자기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서 꾀를 낸 것에 불과했습니다. 아내를 빼앗기는 것보다 자신의 생명을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앞섰던 비겁한 행동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신뢰하지 못한 행동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믿음으로 순종하여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까지 이동하는 큰 결단을 내린 아브라함이 어떻게 이런 비겁한 행동을 했을까요?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서 시작된 믿음이라 할지라도, 사람의 인격이 하루아침에 올바르게 변화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아브라함의 이런 모습은 그 시대의 문화와 사상으로 볼 때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합리적인 결정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 이상했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것은 분명히 믿음의 탈선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으로부터 벗어난 것도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복의 통로로 삼기 위해서 그와 하나님 자신을 은혜의 약속으로 묶으셨습니다. 이때부터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의 삶은 모든 선택이 하나님과 맺어진 언약에 비추어 판단되고 행동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간 것은 그가 인간으로서는 최선의 행동 같았지만, 하나님과의 은혜 언약의 측면에서는 탈선이었습니다. 그의 최선은 세상이 말하는 최선이지,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최악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있어서 최선의 기준은 상황이 아니라, ‘부르심의 약속입니다. 전능자의 그늘 아래 머무는 삶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삶의 모든 해석의 기준이 하나님의 약속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상황에 얼마나 잘 대처했는가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을 만나든지 간에 하나님의 부르심의 약속을 잘 붙잡고 순종하며 인내했는가를 보십니다. 예찬이 결혼자금 대준 것 십일조 구제하라, - OK

안타깝게도 아브라함은 당시 사상과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세속적인 가치관과 인생관이 여전히 그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어떤 사람이 믿음생활을 시작했다고 해서 갑자가 모든 생각과 삶이 완전히 거룩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것은 믿는 순간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되는 체험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하나님의 선언을 앞세우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들의 믿음이 연약한 것을 합리화 시켜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낙심할 필요도 없습니다. 또한 여전히 밑바닥 믿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공동체 식구들을 정죄하거나 비난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 모두는 아직도 공사 중인 건물과 같기 때문입니다. (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우리의 성숙의 소망은 우리를 부르시고 이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C. 성숙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은혜

마지막으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부르신 하나님은 그가 당시 시대적인 사상과 문화에 얽매여 있는 것을 그대로 두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위험에 처하게 하심으로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던 세속적인 가족관, 인생관, 가치관까지 아주 세세하게 고쳐 주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땅을 선물로 받고, 믿음의 조상, 새로운 민족의 조상이 되는 비전을 받았지만, 그 큰 비전은 부부관계와 인간관계에서의 성숙이 뒷받침되어야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시대가 갖고 있었던 부부관의 가장 큰 문제는 남편이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요구해도 아내는 아무런 문제제기도 하지 못한 채 그냥 순종해야 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그의 아내 사라를 이러한 태도로 바라본 것을 고치기를 원하셨습니다.

위기 상황에서 아내보다 자기 생명을 지키려 했던 이기적인 태도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비겁한 태도를 고치기 위해서 지금의 상황에 처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당신의 친구요 믿음의 조상으로 부르실 때, 함께 동거하는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 아내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신실한 사람으로 부르셨습니다.

남편의 믿음은 아내에게 평가 받고, 아내의 믿음은 남편에게 평가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다 좋은 점수를 받아도 자기 배우자에게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는 믿음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나는 몇 점?

바로는 결국 사라를 자신의 왕궁으로 불러들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라 덕분에 융숭한 대접을 받고 양과 소와 나귀와 여러 하인들까지 얻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를 기뻐했는지 슬퍼했는지 잘은 모르지만, 그는 이 일로 더욱 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라는 매우 위험한 상황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아브라함의 잘못된 행동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직접 바로에게 개입하셔서 사라와 그 가정을 보호하셨습니다. (12:17)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보호하신 것일까요?

첫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해 자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둘째,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아브라함만이 아니라 그의 아내 사라도 함께 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부르셨을 때, 사라를 열국의 어미로, 그리고 믿음의 어머니로 함께 부르셨습니다. 그들의 후손 가운데서 메시아가 어셔야 했기에 하나님께서 사라를 바로의 손에서 건지신 것입니다. 그 어떤 것도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빼앗을 수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일로 큰 수치를 당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로부터도 책망을 받는 수모를 당해야 했습니다. (12:18)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앞에서 하나님을 아는 자로서 진실하고 경건한 증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큰 영적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 일을 통해 아내를 진실로 사랑하는 남편이 되어야 한다는 것과, 시대의 악습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께서 짝 지어주신 아내를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배웠을 것입니다. 베드로 역시 이 말을 했습니다. (벧전3:7)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아브라함은 또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뿐만 아니라, 애굽도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통치 영역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나타나셔서 애굽에 재앙을 내려 사라를 보호하는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은 지역신이 아니라,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주권자요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배우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탈선에도 불구하고 주신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고 이루어 가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심지어 아브라함이 실패할수록 더욱 크신 은혜와 능력으로 동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위해 실패가 필요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은 인간의 실패를 넘어 은혜로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합시다. 할렐루야

결론

하나님의 사람은 부르신 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비록 우리의 성품이 하루아침에 변화되지 않을지라도, 그래서 여전히 우리를 지배하는 세속적인 가치관 때문에 실패할 때가 더 많지만, 하나님은 여러 가지 환경으로 역사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법을 깨닫게 하십니다. 아직도 실수와 허물투성이지만 우리를 당신의 사람으로 부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온전케 하실 그날을 바라보며 믿음의 길을 부지런히 걸어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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