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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의 기도
2021-02-27 22:58:41 강동열목사 82  

 

느헤미야의 기도

느헤마야 1:1- 11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데카르트가 남긴 명언 가운데 가장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구절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일 것입니다. 이 논제에 따르면 인간의 존재 중심이 생각과 이성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고 사랑하는 대로, 혹은 좋아하는 대로 살아가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간단한 예로, 술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지만, 실제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 먹고 마시다가 병들어 죽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존재 중심이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데카르트의 말을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요? “나는 사랑한다. 고로 존재한다.” (인사) 우리는 사랑함으로 존재합니다.

, 그렇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여기서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다시 말해서 기도는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지표입니다. 그 사람이 기도하는 내용을 보면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래서 하나님과 이웃을 진정 사랑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이웃을 축복하는 중보기도를 드립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기도하지 않을까요? 스스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진정한 필요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은 스스로 만족할 수 없고, 충분할 수도 없으며, 스스로 의로운 존재가 될 수 없음을 고백하기에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그들에게 있어서 기도가 생명이요, 에너지요, 전부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비전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며, 무엇을 해야 할지는 오직 기도 속에서 잉태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게 합니다. 반면에 기도 없는 행동은 우리를 방황하게 만듭니다. 많은 노력을 하지만 열매가 없는 것은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만이 하나님의 때와 방법을 따라 살게 합니다. 기도는 믿음의 길을 걷게 합니다. 기도는 비전을 따라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게 합니다. 기도는 사람의 판단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을 도전하게 합니다. 그래서 기도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느헤미야는 기도를 가장 소중한 행동으로 여겼습니다. 생각 속에 머무는 기도가 아니라, 실제로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느헤미야가 성벽을 짓고,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지도자로 쓰임 받은 이면에는 기도가 있었습니다. 본문인 느헤미야서 1장에 기도가 나오고, 마지막 장 마지막 절에도 기도가 나옵니다. (13:31) “...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

느헤미야서의 시작과 끝이 기도요, 일의 시작과 마지막이 기도였습니다. 느헤미야는 형통할 때나 장벽을 만나 어려울 때 기도로 돌파했습니다. 쉬지 않고 기도했으며 기도가 습관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입니까? 관계입니까? 물질입니까? 아니면 건강, 지식, 명예입니까? 느헤미야에게는 기도였습니다. 기도가 가장 중요한 행동일 때 우리 삶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A. 느헤미야의 통곡(1-4)

느헤미야는 BC 586년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함락된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 있을 때 그곳에서 나고 자란 유대인의 후손입니다. 주전 464- 423년까지 페르시아를 통치했던 아닥사스다 롱기마누스 왕의 술 관원이었습니다. 오늘날엔 술 따르는 직책을 천박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 왕은 언제든지 정적들에 의하여 암살 또는 독살당할 수 있는 위험 때문에 왕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왕과 친밀한 사람만이 그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정치적인 영향력도 컸습니다. 느헤미야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위로라는 뜻입니다. 그 이름대로 느헤미야는 한 시대에 하나님의 위로를 보여주었던 존귀한 인물입니다.

고레스 왕의 칙령으로 이스라엘의 포로귀환이 시작되었지만, 느헤미야는 페르시아에 남아서 고위 관직에 올랐습니다. 그가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은 것은 고국에 대한 사랑이 없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세우시고, 다니엘을 바벨론의 총리로 세우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느헤미야를 페르시아의 수산 궁에 술 맡은 관원으로 세우신 뜻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 왕의 신임을 받아야 하고, 성실해야 하고, 실력이 있어야 했습니다. 세상 속 그리스도인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세상 속에서 자신의 부귀영화와 명예를 위해 높은 자리를 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역사에 쓰임 받기 위하여 성실과 실력과 믿음을 줄 수 있는 일꾼으로 그 위치에 올랐던 것입니다.

그는 예루살렘 출신은 아니지만, 그의 조상들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주전 586년 예루살렘이 어떻게 멸망했는지, 멸망의 원인이 무엇인지, 포로로 잡혀올 때 수치스러운 모습, 고달픈 포로생활 등을 귀가 닳도록 조상들로부터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는 가운데 예루살렘을 사랑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대한 그의 사랑은 단순히 동족에 대한 집착과 민족주의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을 눈앞에 두고 눈물로 통곡했던 예레미야의 (15:5) “예루살렘아 너를 불쌍히 여길 자 누구며 너를 위해 울 자 누구며 돌이켜 네 평안을 물을 자 누구냐라는 질문에 응답했던 사람이 느헤미야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해 느헤미야를 택하신 것입니다. 5만여 명의 유대인들이 돌아갔지만 성전을 재건하는 일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기초만 놓은 채 16년 동안 방치되었습니다. 성벽은 재건되지 못하고 끊임없이 이방인들에게 시달렸습니다. 예루살렘은 수치와 조롱을 당했습니다. 바로 그때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의 형편을 듣게 되었습니다(2-3).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자들과 수치스러운 형편을 들었던 느헤미야의 반응과 기도가 여기 기록되어 있습니다. (1: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단어 하나하나에 느헤미야의 깨어진 마음이 나타납니다.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세상을 바라보는 이들에게는 통곡의 눈물이 존재합니다. 예레미야와 바울이 그런 눈물을 흘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향하여 가실 때, 주님을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울며 따라오는 여인들을 향하여 얼굴을 돌려 말씀하셨습니다. (23:28)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지금 우리는 민족의 미래와 지도자들을 위해 가슴을 치며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지도자들은 나라의 미래는 안중에 없고 오직 권력 잡기에만 열중하고 있습니다. 북한 동포들은 예배의 자유를 빼앗기고 깊은 곳에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청년들은 결혼을 기피하고 결혼을 해도 자녀를 낳지 않으려 합니다. 심지어 먹고 살 것이 없는 북한보다 출산률이 낮고 세계 꼴찌를 기록하고 힜습니다.

많은 청소년들이 인터넷 문화에 중독되어 꿈을 상실하고, 게임과 같은 현실 도피에 빠져서 미래를 향한 도전 의식 없이 허우적대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 없이는 희망이 없는 나라가 이 민족입니다. 지금 우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눈물의 중보기도를 드릴 때입니다. 오늘 이 세대를 아버지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며 가슴이 찢어지는 통곡의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성도들이 복이 있는 줄 믿습니다. 그 한 사람이 바로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B. 진정한 회개와 고백(5-7)

그렇다면 이런 안타까운 현실 앞에서 어떤 중보기도를 드려야 할까요? 느헤미야의 기도입니다. (1:5-7) “(5)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6)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진정한 회개에는 두 가지 고백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을 고백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과 유다의 멸망에 관한 역사를 듣고 그 현실을 바라보면서 죄를 미워하시고 진노하시며 징벌하시는 하나님을 분명히 보고 배웠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배척하고 휴머니즘으로 포장된 죄를 짓고 그것을 장려하는 나라와 공동체를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께 범죄를 일삼는 이 민족이 언제까지 외줄타기로 생존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영적 위기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언약을 붙잡고 그 언약 가운데 들어오는 모든 이들을 사랑하시고, 보호하십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가 이렇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진노를 쏟아내지 않고 보류하실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사랑과 언약의 우산으로 우리를 보호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언약 안에 들어오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희망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하나님의 언약의 날개 아래 들어오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또한 느헤미야의 고백에 놀라운 단어가 나옵니다. ‘우리라는 단어입니다. 엄밀히 말해서 예루살렘이 멸망한 것과 동족이 처한 위기는 느헤미야가 아니라 조상들의 책임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조상들의 죄라고 하지 않고 우리 죄라고 고백합니다.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6) 순서를 보십시오. “나와 내 아버지 집이 범죄하여”(6b)’ 자기부터 시작합니다. 자신이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 지도자였던 것처럼 하나님 앞에 회개합니다.

여러분, 이 나라와 민족의 회복을 향한 회개의 출발은 누군가를 향한 비난과 정죄가 아닙니다. 비난의 화살이 회복을 가져오지 않습니다. 저들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문제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잘 되면 자기 탓이라 하고, 일이 잘못 되면 조상 탓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달라야 합니다. 특별히 이번 중보기도에 동참하는 모든 성도들은 민족의 문제, 이 사회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여기고 가슴을 치며 회개하고 잘 되기를 기도하는 축복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C. 시대와 문화를 뛰어넘어(8-11)

(1:8-10) “(8)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9)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10)이들은 주께서 일찍이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들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느헤미야가 이방 땅에서 출생하고 자라나 페르시아 왕의 술 관원이 될 때까지 그는 이방문화 교육을 받고, 이방문화 속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적인 기도,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물줄기를 붙잡고 기도하는 것이 매우 놀랍습니다. 어떻게 그런 기도가 가능했을까요? 그 비결은 단 한 가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예레미야가 예언한 서책의 필사본이 돌아다녔고, 그것을 다니엘이 읽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회복을 위해 기도한 것이 다니엘 9장입니다.

또한 모세의 율법 내용들이 필사된 서책들이 느헤미야에게 전해졌고, 그는 그 말씀을 소중하게 여기고 묵상하면서, 시대와 민족과 언어와 문화를 뛰어넘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소중한 것입니다. 말씀 속에 하나님의 뜻이 있고, 그것을 붙잡고 기도하는 자가 하나님의 비전을 바르게 구함으로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이제 느헤미야의 기도는 점점 더 적극적으로 발전합니다. (1:11)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본문에 등장하는 느헤미야의 기도 가운데이라는 단어를 여덟 번이나 반복합니다. 종은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하는 자요, 말씀대로 행하려는 자입니다. 자신을 하나님에서 종으로 고백하며 살았던 느헤미야의 기도는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갑니다.

느헤미야는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들(this man)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여기서 이 사람은 아닥사스다 왕을 가리킵니다. 이 구절만 보면 자신의 신분이 높아지고 세상적으로 더 형통하게 해달라는 기도처럼 보이지만, 그게 아닙니다. 느헤미야가 슬픔 가운데서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백성의 회복을 간구한 한 다음, 이 기도를 드린 것은 자신을 회복의 역사에 사용해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자신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높여 달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강력한 믿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든 인생들은 그 뜻대로 움직이시는 하나님께서 이방 나라의 왕을 움직이셔서 그 사람 앞에서 은총(favor)을 입고 잘되게 해서 예루살렘 재건을 위해 자신의 삶을 사용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여러분, 이 기도가 여러분의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다음 세대, 특별히 취업을 위한 기도 제목이 많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은총을 입어서 잘 되어야 하는 이유가 분명해야 합니다. 단순히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출세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분명히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비전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런 소명 때문에 자녀들을 축복하는 여러분의 기도가 응답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결론

이번 중보기도는 코로나19로 인해 참으로 어려운 때에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불리한 환경 가운데 우리가 기도하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실 줄 믿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무엇을 사랑하고 계십니까? 다시 말해서 무엇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까? 나라와 개인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 앞에서 남 탓만 하다가 함께 침몰하지 말고 한 배를 탄 민족 공동체로서 우리 죄를 회개하며 가슴을 치며 기도합시다. 특별히 하나님나라를 위해 쓰임 받기 위하여 자녀들의 축복의 문이 열리도록 기도합시다. 이런 기도가 반드시 응답되어 하나님나라의 역사에 길이길이 기억되는 승리와 행복의 화평 공동체가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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