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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2021-04-10 23:29:02 강동열목사 55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창세기 13:1-13

며칠 전 대구에 사는 제 딸이 재미있는 사진을 한 장 보내주었습니다. 제 사위가 근무하는 직장에서 구한 사진인데 일단 한 번 보시겠습니다(사진). 여기에 보면 <Jesus Nut>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헬리콥터의 회전날개와 엔진의 동력을 연결하는 일종의 핀인데, 만일 이것이 빠져버리면 헬리콥터의 회전날개와 몸체가 분리되어 조종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예수님께 기도하는 것밖에 없어서 붙여진 이름이 <Jesus Net>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우리의 구원이십니다. 이 불안하고 곤고한 세상에서 생명의 길, 복된 길을 찾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생명의 핀이 되시는 주님께 나아오십시오. 주님의 손을 붙잡는 자를 반드시 구원하실 것입니다. 옆 사람과 인사를 나누겠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이십니다

올해 초부터 아브라함의 생애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40일 작정 기도회와 고난주간, 부활주일을 연이어 보내면서 그에 따른 주제 설교를 하느라 아브라함의 셋째 이야기를 하다가 멈췄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의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바로 왕에게 자기 아내를 누이로 넘길 뻔한 위기를 맞이했지만, 하나님의 개입으로 화를 면하고 바로가 준 수많은 양과 소와 노비, 암수 나귀와 낙타를 이끌고(2:16) 가나안 땅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때 가나안 땅으로 복귀한 아브라함의 모습을 본문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13:1-2) “(1)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2)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비록 잠시 믿음에서 탈선했음에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축복의 통로로 세워가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 아브라함에게 있었던 일들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자 합니다.

A. 예배가 회복됨(1-4)

그렇다면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 아브라함이 행한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13:3-4) “(3)그가 네게브에서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4)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으로 돌아와 네게브를 거쳐, 벧엘과 아이 사이에 도착했습니다(지도). 그곳은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처음 들어왔을 때 하나님을 위해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던 곳이었습니다(12:8).

이번에도 아브라함은 그곳에서 다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가 다시 회복된 것입니다. 여기서 전에’, ‘처음으로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아브라함이 영적으로 회복되어가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은 애굽에서의 실패를 깊이 깨닫고 하나님의 앞에 다시 나아오게 된 것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큰 죄를 짓고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서 돌아와, 처음 하나님께서 나타나셨던 장소에서 드리는 예배가 얼마나 큰 감격이었을까요? 이전에 드렸던 예배와는 비교할 수 없는 큰 감격이었을 것입니다.

이때부터 벧엘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상징적인 자리가 되었습니다. 훗날 야곱이 형 에서와 아버지 이삭을 피해 도망가던 중에도 하나님은 이 벧엘에서 나타나셔서 그를 만나주셨습니다. 그 후에 하란의 외삼촌 집에서 숱한 고난을 겪은 야곱이 가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지만, 영적으로 느슨해져 세겜에서 몰살당할 처지에 물렸다가, 벧엘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이곳으로 돌아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던 곳입니다. 벧엘은 영적 회복의 처소였습니다.

우리에게도 벧엘이 있어야 합니다. 지난 날 우리를 처음 만나 경험했던 하나님의 은혜와 임재를 회복하는 영적인 장소가 필요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집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배당은 하나님의 임재를 회복하기에 참 좋은 처소입니다. 인생길에서 만난 시험과 환난으로 방황하고 지쳐 있습니까? 자식에게 아버지 집 외에 돌아갈 곳이 어디 있겠습니다. 이 제단에 나와서 하나님께 엎드리는 자마다 영혼이 살아나고 언약이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B.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섭리(5-7)

어떤 면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공평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내를 누이라고 속인 아브라함과, 고대 왕정 사회에서 자기 영역 안으로 들어온 여인을 자기 아내로 삼으려는 바로 가운데 누가 더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연히 도덕적으로 아브라함이 애굽의 바로 왕보다 의롭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처분은 달랐습니다. 바로의 집에는 큰 재앙을 내리셨고, 아브라함은 보호하셨으며, 그때 얻은 재물도 반납하지 않고 가지고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의 독특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독특함이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주셨던 약속의 신성함과 신실하심입니다. (12:1-3) “(1)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즉 아브라함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 언약을 변개하지 않으시고 이루어 가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전 생애는 이 언약의 말씀의 성취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아무튼 아브라함이 애굽에서 나올 때 얻은 많은 재물 때문에 아브라함과 롯 사이에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아브라함의 양치기들과 롯의 양치기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난 것입니다. 가진 것들을 모두 수용하기에는 그들이 함께 머무는 땅이 너무 좁았습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롯에게 서로 헤어질 것을 권합니다. 친족끼리 다투는 것이 근처에 살던 가나안 원주민들 보기에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조카 롯에게 선택권을 주어 먼저 원하는 곳을 향해 떠나도록 했습니다.

지금까지 아브라함이 조카 롯과 동행한 이유는 아마도 먼저 죽은 동생 하란을 대신하여 자신이 롯을 돌보아 주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이제 그 책임감과 의무감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서로의 목자들이 다투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족장 사회에서 조카가 삼촌을 대항한 것입니다. 그것도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서 자기를 지켜주고 삶의 기반을 닦아 준 삼촌에게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한 사건을 보면서 이제는 헤어질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의 해석은 창세기 121-3절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을 기준으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주신 사람은 아브라함과 사라 부부였던 것입니다.

여기에 롯은 해당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한 사람을 통해 새로운 미족을 일으키기 원하셨지, 롯까지 믿음의 조상으로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조상으로 부름 받아 약속을 따라 걸어가야 하는 아브라함에게 롯은 언젠가는 반드시 떠나보내야 하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물의 풍족함이 만들어 낸 목자들끼리의 싸움과 그로 인한 아브라함과 조카 롯의 결별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궁극적으로 롯이 아브라함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그와 연결되어 있던 과거의 모든 것들, 곧 죄악으로부터 철저하게 분리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경건한 신학자들은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내려가기로 결정한 데는 롯의 역할도 한몫을 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때문에 택함을 받은 아브라함으로부터 롯이 떠나야 했던 것입니다. (4:3)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그를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할렐루야!!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 교제하고 어떤 일들을 함께 도모해 나갑니다. 그런데 어떤 예기치 않은 순간,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그 만남을 깨뜨리실 때가 있습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다른데 있습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려고, 우리로 하여금 온전한 믿음의 길을 가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신비한 간섭이요 놀라운 섭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아브라함처럼 세상 가운데서 복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상 가운데서 거룩한 나라의 제사장으로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함으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 일에 합당하지 못한 사람을 우리에게서 떨어져나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신비스러운 섭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를 나 한 사람을 위하여 움직이듯 섭리하십니다. 그 터무니없어 보이는 사랑, 그 크고 놀라운 사랑이 우리의 미래를 복되게 만들어 가실 것입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복하여 내 모든 삶을 주님께 기꺼이 드리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C. 선택이 그 사람이다(8-13)

이제 헤어짐에 있어서 아브라함은 먼저 롯에게 땅을 선택하도록 배려했습니다. (13:9)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아브라함의 제안은 분명 너그러운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온유한 마음, 조카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제안을 받은 롯의 선택은 소돔 평야였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가나안 땅은 처음부터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 역시 소돔 땅이 악한 줄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는 물질과 그 문명이 주는 화려함의 유혹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13:10-11) “(10)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11)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롯의 선택 기준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약속이 아니라, 오직 눈에 보기에 풍요롭고 눈을 즐겁게 하는 땅이었습니다. 그는 땅을 선택하기 전에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았습니다. 전적으로 육체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따라 선택했습니다. 롯의 선택 기준은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의 눈에 보기에 좋은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롯은 그도라오멜 연합군에게 포로로 잡혀갔고, 후에는 소돔과 고모라가 불타면서 모든 소유를 잃고 말았습니다. 그의 아내는 소금 기둥이 되었고, 딸들은 타락한 소돔의 영향을 받아 아버지의 씨를 받아서 모암과 암몬을 낳아,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향하여 나아가는 길을 방해하는, 하나님나라 훼방꾼이 되었습니다.

내가 선택한 것은 나의 마음의 투영입니다. 내가 선택한 것이 나의 본모습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무엇을 선택하고 계십니까? 무엇을 손에 쥘 때 가장 행복하십니까? 그것이 거룩한 것이기를 소원합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영혼을 살리고 유익하게 하는 것이기를 바랍니다. 나의 선택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갑시다.

D. 믿음은 바라보고 다녀 보는 것(14-18)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소중한 것으로부터 결별할 때마다 동일한 약속을 반복적으로 주셨습니다. 창세기 121-3절의 약속은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갈 때 주셨습니다. 이번엔 조카 롯과 이별하고 난 직후에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 약속을 확인하셨습니다. (13:14-16) “(14)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5)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독자 이삭을 제단에 바친 직후에도 동일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22:16b-18)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18)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나님은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후에 다시 생생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적으로는 남은 혈육마저 떠나는 것이 매우 섭섭하고 외로웠을지 모르지만,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믿음의 사람으로서는 이러한 분리와 구별이 반드시 필요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세상과 구별된 믿음으로 나아오는 자에게 가까이 다가오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위로하시면서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17) 첫째는 바라보는 것이고, 둘째는 다녀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이 비록 척박해 보여도 하나님께서 분복으로 주신 기업이기에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장차 얻을 기업으로 여기고 다녀보라는 것입니다.

만약 부모가 어린 자녀를 장난감 상점으로 데리고 가서 무엇이든 고르는 것을 사 주겠다고 한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그 상점의 모든 물건이 다 자기 것인 것처럼 만지면서 좋아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 땅을 바라보고 다녀보라고 하신 것은 다 네 것인 양 만져 보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을 듣던 당시 아브라함에게는 단 한 명의 자손도 없었습니다. 아내 사라는 자식을 낳을 수 없는 몸이라는 사실을 아브라함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장차 번성할 후손이 편만하게 거할 땅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종과 횡으로 다녀보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현재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지라도, 내 눈에는 척박해 보이는 땅일지라도 동서남북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약속을 붙잡고 나아갈 때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신비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안팎으로 우리를 좌절시키며, 현란한 유혹이 난무한 이 때, 우리의 영혼을 <Jesus Nut>로 하나님께 고정시키십시오. 그리고 우리를 복되게 하시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인내하며 구별된 삶으로 거룩하고 복된 내일을 맞이하는 화평의 가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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