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 회 소 개 목사님과 함께 구 역 나 눔 교회사역/영상 교 회 학 교 화평 나눔터
 
목양수필
담임목사주일설교
금주의구역공과
목양일기

 

:

아들을 번제로 드리기까지
2021-06-27 00:11:41 강동열목사 124  

 

아들을 번제물로 드리기까지

창세기 22:9-14

조은아라는 20세의 여자 청년이 있었습니다. 어느 여름 날, 그녀는 러시아어권 선교사가 되겠다고 기도를 시작했고, 그렇게 10년을 준비한 끝에 마침내 카자흐스탄 선교사로 파송 받게 되었습니다. 출발 며칠 전, 드디어 나의 헌신과 준비로 나로 하여금 선교사가 되게 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무척 기특하게 생각한 순간, 그녀는 자기 마음속에 선명하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은아야, 네가 헌신할 수 있었던 것도 다 내 은혜야.” 하나님의 이 음성 앞에서 그녀는 너무나 부끄러워 엎드려 펑펑 울려 일기장에 써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 나의 달려 갈 길 다 가도록 / 나의 마지막 호흡 다하도록 / 나로 그 십자가 품게 하시니 /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 한량없는 은혜 갚을 길 없는 은혜 / 내 삶을 에워싸는 하나님의 은혜 / 나 주저함 없이 그 땅을 밟음도 /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저는 이 찬송을 부를 때면 아브라함의 믿음의 여정이 떠오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아브라함은 본래 믿음의 조상 혹은 하나님의 은총을 세계와 열방에 흘려보내는 열국의 아버지와는 상당히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믿음에 실패하여 넘어질 때마다 하나님께서 적극적으로 개입하셔서 그의 삶을 보호하시고 믿음을 회복시켜주셨습니다. 신앙생활 초기에 그는 가뭄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을 버리고 가나안 땅을 떠나 애굽까지 내려갔다가 큰 수치를 당했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100세에 얻었던 외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 번제물로 드리기까지 흔들림 없는 믿음의 조상의 반열에 오른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갈대아 우르 출신의 한 족장이 오늘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될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은혜였던 것입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생애를 통해 가르치신 믿음 시리즈 마지막 시간으로,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사건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A. 약속보다 약속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라(1-3)

지난 시간에 배운 것처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이삭을 태어나게 하심으로 아브라함과 사라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랑스러운 이삭이 잘 자라고 있던 어느 날, 하나님꼐서 아브라함에게 큰 시험을 주셨습니다. (22:1-2) “(1)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라는 이 명령은 두 가지 딜레마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딜레마는 사랑의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렇게 비윤리적인 명령을 내리실 수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소나 양이 아닌, 사람의 생명을 제물로 요구하신 것은 선하신 하나님이 내릴 수 있는 명령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내용을 근거로 구약의 하나님은 폭력적이고 열등한 신이므로 구약은 폐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과연 하나님은 그런 비열한 신이실까요?

이 딜레마에 대한 대답은,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말씀하신 것을 가지고 하나님이 사람을 죽이는 것 자체를 기뻐하고 즐기는 분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하나님의 성품과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명령으로는 성품을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부모가 자녀를 훈계하려고 벌을 줄 때, 그 상황만 가지고 부모는 벌을 주는 나쁜 존재라고 해석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이 시험은 실제로 아브라함이 그렇게 하기를 바라신 것이 아니라, 이제까지 자라온 그의 믿음이 어떠한지를 시험하려고 주신 명령이었습니다.

참고로 이런 시험을 선택하신 배경에는 그 당시의 문화적 관습과 연관이 있습니다. 당시 고대 근동의 이방인들 가운데서 실제로 인간을 제물로 드리는 종교 의식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믿는 신에 대한 최고의 사랑의 표현으로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비인륜적이고 열등한 종교 의식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와 비슷한 지시를 내리신 것은 그분이 이방 신들과 같은 수준이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다만 실제로 존재하지 않은 신이나 우상에게 사랑과 충성을 보이기 위해서도 그러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다면 나를 믿는 너는 내게 어느 정도의 사랑과 믿음을 보일 수 있느냐?’하는 시험이었던 것입니다.

사실 이 시험은 하나님께서 이미 정답을 다 가르쳐 주셨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과연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는 분인 것을 믿고 신뢰하는가?’를 알아보기 위한 시험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문제 앞에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고 순종합니다. 그래서 아침 일찍 일어나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22: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두 번째 딜레마는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이 하나님께서 이전에 주셨던 약속과 반대된다는 사실입니다. 처음에 부르실 때부터 계속해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후손을 주셨는데, 이제 와서 바치라는 것입니다. 만일 이삭을 번제단에서 죽인다면 하나님의 약속이 깨지고 말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을 믿는 것과 약속하신 분을 믿는 것을 구별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약속 자체에 있지 않고 약속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약속보다 중요한 것은 약속하신 분입니다. 약속 자체를 다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약속하신 분을 온전히 신뢰한다면 우리는 어떠한 말씀일지라도 순종할 수 있습니다.

어린 자녀들은 부모가 외출했다 돌아오면 그 시선이 먼저 부모의 손을 향합니다. 아직도 우리의 믿음의 시선이 하나님의 손에 머물러 있다면, 어린아이의 믿음을 벗어나지 못한 증거입니다. 우리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바라보기 전에 하나님의 얼굴을 진정으로 구할 수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성도가 복이 있는 줄 믿습니다.

B. 믿고 순종하는 자를 반드시 복 되게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라(4-8)

그렇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아브라함은 이 시험에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첫 번째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종들이 3일간의 여행을 통해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곳에 이르렀을 때, 아브라함이 종들을 기다리라고 하고 이삭과 둘이서만 산에 오르는 모습에서 나타납니다. (22:5)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아브라함은 종들에게 우리(내가 아들과 함께)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의 이 고백 속에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깊은 신뢰가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 잔인한 번제를 중지시키실 것을 알고 아들을 번제로 드리는 척했다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지금까지 완전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함으로써, 자신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는 것과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은 서로 충돌하지 않을 것을 믿었습니다. 이전에 그는 생물학적으로 늙은 부부에게 어떻게 자녀가 생길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이 자신에게 일어난 것을 체험했기 때문에 불가능한 요구를 하시는 하나님은 무엇인가 뜻이 있고 계획이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만일 창세기가 21장까지의 이야기 없이 22장부터 시작되었다면 아브라함은 아들을 제물로 드리라는 명령에 결코 순종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은 언제나 그 말씀을 완벽하게 지키시는 분이라는 것을 계속 체험해 왔습니다. 하나님의 타이밍은 언제나 완벽했습니다. 이삭의 출생도 그러했습니다.

이런 체험 신앙의 축적이 더 큰 믿음으로 나아가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차 큰 믿음을 얻기 위해서는 지금 내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체험하는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성도가 장차 죽음의 그늘 앞에서도 천국을 소망하는 믿음으로 담대하게 나아갈 줄 믿습니다.

두 번째는 아들 이삭의 질문에 대한 아브라함의 대답에 그의 믿음이 나타납니다. (22:7-8) “(7)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8)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만일 아브라함의 마음속에 심각한 갈등이 있었다면 아들이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감정이 격앙될 수 있는 타이밍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침착하고 의연하게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런 믿음을 가지고 흔들림 없이 하나님의 명령을 실행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함으로써 하나님의 계획을 예측할 수 있는 믿음의 단계까지 이른 것입니다. 분명히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을 놓고 기도하면서 생각했을 것입니다. ‘내가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는 것으로 끝난다면 하나님의 약속은 무너질 것이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을 무너뜨리는 행동을 요구하시는가?’ 이 질문에 아브라함이 어떻게 순종할 수 있었는지 히브리서가 우리에게 그 답을 제시합니다.

(11:17-19) “(17)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18)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19)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명령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일치되기 위해서는 한 가지 길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 자신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고 하나님은 이삭을 다시 살리심으로 약속을 지키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삭을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기에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바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명령은 상호 모순을 불러일으키거나 서로 충돌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를 무조건 복되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C. 우리의 죽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교체하라(12-13)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이려고 할 때 하나님은 모든 상황을 중지시키셨습니다. (22: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이삭은 풀려나고 아브라함 그의 인생에 믿음에 관한 마지막 시험을 통과하여 합격 판정을 받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믿음의 시험을 통과함으로 번제가 중단되지 않았습니다. 이번 시험의 보다 본질적인 주제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어린 양으로 제물을 대신하여 번제가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오고 오는 믿음의 후손들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시험은 계시로 그 역할이 바뀝니다.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했던 아브라함의 믿음의 고백은 예언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번제물을 친히 준비하셨습니다. (22: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이 시험은 아브라함의 믿음에 관한 시험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건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물로 아브라함의 아들을 요구하셨지만, 이삭이 희생되지는 않고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제물로 교체되었습니다. 이삭이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어린 양이 이삭을 대신하여 죽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여호와 이레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우리 인생 최고의 여호와 이레는 나의 죽음의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를 예비하신 사건인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어린 양입니다. 세례 요한이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신 예수님을 가리켜 이렇게 말했습니다. (1:29)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죗값을 치러야 하는 우리를 그냥 용서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삭 대신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어린 양이 희생된 것처럼, 우리 대신 예수님께서 희생되셔서 우리에 대한 심판이 이루어졌습니다. 예수께서 이미 십자가 위에서 심판을 받으심으로 우리가 심판에 이르지 않고 구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구원은 가장 위대한 교체의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과 우리를 십자가 위에서 교체하셨습니다. 우리가 올라가야 할 죽음의 제단에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올리셨습니다.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대신하여 번제물이 된 어린 양의 희생은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 사건의 가장 분명한 예표가 되었습니다.

결론

우리는 아브라함이 이삭과 함께 올랐던 그 언덕 갈보리에서 나를 대신한 하나님의 어린 양의 죽으심을 발견합니다. 아브라함의 이삭 제사는 아브라함의 믿음만 시험하고 중지시켰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죽음은 중지시키지 않으셨습니다. 바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장차 오실 예수님을 명확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믿음의 여정은 오실 그리스도를 예비하고 믿는 삶이었습니다. 오늘 이 시대 우리의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원리를 아브라함의 생애를 삶을 통해 보여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 안에 믿음을 시작하신 분도 예수님이시고, 아브라함의 믿음을 온전케 하시는 분도 역시 예수님이십니다. 그 예수를 바라보는 자가 복이 있고 구원을 받습니다.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부디 어두운 죄의 그늘 아래서 벗어나 전능자의 그늘 아래 한 평생을 살았던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주인이시며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모든 죄를 씻음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세상에 하나님의 복을 흘려보내는 거룩한 믿음의 화평 가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예수께서 기준이신 교회
  마침내 웃게 하시는 하나님
익금화평교회
청산화평교회
옥룡화평교회
연소화평교회
조도화평낙도선교센터
한국교회를 지키자. 신천지 OUT !
성경쓰기/암송
주제별성경
성경인물사전

8명
160337명

Address : 58005 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 상성길 330-4 (동순천IC입구)
Tel : 061-722-5253 E-Mail : peace-vision@hanmail.net
CopyRight ⓒ 2004 - 2021 All Rights Reserved By 순천화평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