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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기준이신 교회
2021-07-03 23:07:10 강동열목사 97  

 

예수께서 기준이신 교회

마태복음 16:13-19

우리 교회가 광양읍 칠성리에 터를 잡고 세워진 지 만 31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어간에 어리고 제대로 준비 되지 못한 채 교회를 개척했던 저로 말미암아 몇 번의 위기도 있었지만, 오직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좋은 성도님들을 만나 선교와 구제, 그리고 다음 세대를 세우기 위한 로고스 스쿨 등, 꿈같은 비전을 이루면서 오늘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모든 감사와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립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코로나19라고 하는, 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위기 앞에 서 있습니다. 찬양대 찬양, 구역 모임, 로고스 스쿨 등은 중지된 지 오래되었고,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과 교회를 바라보는 사회의 싸늘한 시선으로 인해 마치 성장점이 꺾인 식물처럼 전도의 문이 막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 이런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우리가 확신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건강한 주님의 교회는 어떤 위기와 어려움 가운데서도 세상 속에서 구원의 방주의 역할을 감당하며 지속적으로 하나님나라를 확장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수요일 밤에 교회사를 통해 배우고 있습니다.

심한 복통으로 입원한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더 기름지고 영양가 있는 음식 공급이 아니라, 조금은 힘들더라도 금식을 하며 속을 비우고 내시경 같은 것으로 진단하는 것이 우선인 것처럼, 한국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무엇이 문제인가를 확인하고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 오늘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이런 영적 필요에 따라 오늘부터 당분간 성경이 제시하는 건강한 교회를 구현하기 위한 시리즈 설교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그 첫 시간으로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기준인 교회에 관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A.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인 교회

1996년 캐나다 동부의 뉴퍼들랜드 지역을 지나던 미 해군함대 앞에 캐나다 국적의 장애물이 포착되자 곧 교신이 시작되었습니다. 다음은 그 통신 기록입니다.

미 해군: 충돌을 피하기 위해 북쪽 15도 방향으로 항로 우회하기 바람. 응답 바람. / 캐나다인: 충돌을 피하기 위해 차라리 당신 항로를 남쪽 15도 방향으로 우회하기 바람. 응답 바람. / 미 해군: 본인은 미 해군 함정 함장이다. 되풀이 말한다. 항로를 수정하라. 응답 바람. / 캐나다인: 안 된다. 당신이 항로를 우회하라. 제발. 응답 바람. / 미 해군: 여기는 USA 링컨 항공모함이다. 미합중국 해군함대 중에서 제2위 함대다. 우리는 중급 군함 석 대, 순양함 석 대, 그 외에 상당히 많은 호위함과 함께 항해 중이다. 항로를 북쪽 15도 방향으로 우회하기를 요청한다. 확실히 경고하건대 항로를 바꾸지 않으면 우리 배의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가 취해질 것이다. 응답 바람. / 캐나다인: 여기는 등대다. 응답 바람.

아무리 항공모함이 이끄는 대형 함대라고 할지라도 등대가 배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배의 기준은 등대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라고 말씀합니다. (1:18a)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 그러므로 예수께서 머리가 되는 교회, 예수께서 기준이 되는 교회가 교회의 본질입니다. 그 본질의 자리를 예수님이 아닌 사람이나 사람의 것이 차지하는 순간 교회는 힘을 잃고 쇄락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 이렇게 본질이 중요할까요? 그것은 본질이 정체성과 관계되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팝 음악계의 전설로 남아 있는 비틀스를 기억할 것입니다. 시대를 뛰어넘은 음악으로 전 세계 음악 팬들에게 희망을 주었던 비틀스였지만, 그들은 7-8년간의 활동을 끝으로 해체를 선언했습니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요? 이에 대해 비틀스의 멤버였던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1965년 여름 비틀스는 처음으로 뉴욕 시 스타디움(Shea Stadium)’에서 공연을 가졌습니다. 55천 명의 팬들이 열광을 했는데 이는 비틀스 라이브 공연 사상 최대 규모의 관중이었죠. 그런데 그날 팬들의 아우성과 혼돈 때문에 우리가 연주하는 음악을 들을 수 없었어요. 예술이 인기에 묻혀 버린 거죠. 그때부터 팬들의 소리에 나의 음악 소리를 듣지 못한 것 같습니다. 사실상 그때부터 비틀스는 해체의 길을 걸었던 것 같습니다.” 음악가에게 있어 본질은 음악입니다. 물론 음악을 들어주는 사람들로 인해 음악을 계속할 수 있지만, 음악가에게 음악이 아니라 인가가 더 중요하다면 그 음악가는 오래 가지 못합니다. 본질에서 멀어지면 생명력을 잃게 된다는 사실을 비틀즈는 알았던 것입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머리 되신 예수님께서 분명한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는 교회만이 건강한 교회요, 그런 교회가 세상을 구원하는 방주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역하시는 동안 가르치시는 권위가 서기관들과 같지 않았습니다. (1:22)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만일 예수님의 가르침이 당시 활동하던 서기관들과 동일했다면, 다시 말해서 세상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소리로 즐거움을 주려고 했다면 예수님의 사역을 그리 오래 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의 권위는 세상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었기에 사람들에게 감동과 구원을 선물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도 그래야 합니다. 예수님이 진정 우리 교회의 머리라면, 모든 일에 사람이 아닌, 예수님만 드러나고 높이고 전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이나 재정, 건물과 같이 사라질 것에 의존하는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기준이 되는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부활의 예수를 전하며, 예수를 진정으로 의지하는 교회,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거룩한 삶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몸부림치며 실천하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입니다. 그런 교회를 사모하며 성령의 권능으로 이루어가는 화평의 가족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B. 무엇이 아닌 왜

사도 요한이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편지를 보냈는데, 그 일곱 교회는 당시 소아시아에 존재했던 교회들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시대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모든 교회들의 표상이기도 합니다. (2:1) “...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로 소개되는 그리스도는 지금도 이 땅의 교회들을 통치하고 격려하십니다.

사실 교회가 처한 상황은 어제나 오늘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여전히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사탄은 여전히 하나님 나라를 방해하고 있으며, 지금도 하나님은 세상 모든 민족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일곱 교회 이야기에서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에베소 교회처럼 신앙을 머리로만 하면서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는지, 서머나 교회처럼 환난과 궁핍 가운데서도 죽도록 충성하고 있는지, 버가모 교회처럼 세상의 성공이라는 우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는지, 두아디라 교회처럼 음란한 문화를 용인하고 있지는 않는지, 사데 교회처럼 이름만 살아 있는 교회는 아닌지,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형제를 사랑하며 적은 능력으로 큰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 애쓰고 있는지,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물질과 소유만 자랑하다가 영적인 눈이 멀어버리지는 않았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본질, 즉 교회를 세우신 주님의 처음 생각은 무엇일까요? 그 답을 본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의 배경이 되는 마태복음 16장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표적을 구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미 앞 장인 15장에서 떡 일곱 개로 4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행하셨고, 그 이전에는 오병이어 기적을 행하셨는데,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시 예수님을 찾아와 당신께서 메시아라는 증거로 또 다른 표적을 보여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16:6)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말씀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저렇게 예수님을 원하는데, 왜 조심하라는 걸까? 게다가 누룩이라니 ...’ 당시 제자들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누룩의 의미를 빵에 넣는 누룩으로 오해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이 아닌 기적만을 바라고 따랐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표적을 원했습니다. 기적적으로 빵이 생겨나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병든 자가 낫는 그런 표적을 원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마치 사역 = 기적으로 여겨 욕망을 부풀리는 교훈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 목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은 주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에게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모이는 이유였습니다. 당신 주변에 아무리 사람들이 많아도 눈에 보이는 기적을 이유로 모이는 모임은 예수님께서 원하지 않으셨기에 피하셨던 것입니다.

기적은 제한적입니다. 빵을 먹게 되는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은 또 시간이 지나면 배가 고프게 되어 있습니다. 병든 자를 고쳐도 그 사람은 언젠가 또 병들어 죽을 것이고, 죽은 자가 살아나지만 결국엔 또 죽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려움을 당하는 자들을 긍휼이 여기시고, 나아가서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드러내기 위해 기적을 행하셨지만, 기적 자체가 예수님의 사역의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예수님께서 교회의 설립을 언급하신 말씀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 이야기 바로 뒤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즉 사역의 본질, 교회의 본질을 흐리게 하는 누룩을 조심하고, 교회가 존재해야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지에 집중하라고 요구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기적을 보고 모였던 사람들처럼, 오늘날 교회를 찾는 사람들이 구하는 것도 동일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보이는 기적을 추구하는 누룩이 만연해 있습니다. 이제는 교회가 어떤 일을 하는가라는 ‘What’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왜 존재하는가라는 ‘Why’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16:18) “...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주님이 기준이 되는 교회는 반드시 세상의 관심을 끌게 되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세상이 교회를 미워하고 박해할지라도, 결국 세상은 교회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며, 교회는 세상 어둠의 세력을 이기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만큼 선하시고 온전한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더 많은 자유와 쾌락을 얻기 위해 양심이라고 하는 일반은총 가운데 있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선한 법들을 바꾸고 소유를 극대화하지만, 그럴수록 공허감만 더 커지고 메마른 세상이 되어갈 뿐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교회가 안팎으로 어렵지만, 그리스도께서 기준인 교회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C. 주님의 답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가이사랴 빌립보에 이르러서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13b) 제자들의 대답이 이어졌습니다. (16:14)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사람들이 왜 인물들을 언급했을까요? 그것은 이런 인물들 속에 그들의 메시아 상이 투영되었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 약대 털옷을 입고 석청을 먹으며 회개를 촉구하던 세례 요한의 영웅성, 구약의 가장 위대한 선지자 중 하나요 큰 기적을 행했던 불의 선지자 엘리야, 민족을 위해 눈물과 기도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예레미야와 같은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제자들의 대답은 오늘날 많은 교인들의 모습과 일맥상통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예배를 드리면서 자기 교회와 다른 교회를 비교하기 시작하면서 자기 보기에 좋은 환경과 좋은 프로그램이 있는 교회, 독설로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고, 메시지가 탁월한 유명한 목사를 선택하기 위해 채널 서핑을 하다가 그런 교회를 찾아 떠나버리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소형 교회 목회자들의 안타까운 호소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물으십니다. “그러면 너희는 왜 나를 믿으며 왜 이 교회에 남아 있느냐?” 우리는 이 물음에 분명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이 물음에 대한 올바른 대답 위에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이 물음에 베드로는 (16:16)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대답했고, 바로 이 고백 위에 주님의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어떤 기적도, 사람도, 물질도 교회가 세워지는 근거가 되지 않고, 오직 믿음의 고백이라는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가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입니다. 그 교회가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나라를 이룰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 당시 교회의 문제가 드러납니다. 자신들이 은혜를 받은 사람을 중심으로 패를 만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바울에게, 혹은 아볼로에게, 혹은 베드로에게, 이도저도 아닌 그리스도에게 속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사도 바울은 우리 모두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들이라면서 교회가 사람에 의해 좌우되는 곳이 아니라, 예수께서 주인이 되는 모임이라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고전1:11-13).

오늘날 한국 교회 병폐 중의 하나가 분쟁과 싸움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몇몇 교회는 심각할 정도로 갈등을 겪었습니다. 담임목사를 세우는 문제로 성도 간에 갈등이 생기더니, 심지어는 같은 시간에 위층과 아래층으로 나뉘어 따로 예배를 드리는 비극을 연출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하지만 도리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정말 불행한 사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분쟁이 벌어지면 결코 타협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두 자기 생각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우기기 때문입니다.

돌아보면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빙자하면서 사람 중심적인 잘못을 범하고 살아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인물이 드러나는 교회가 아닌, 하나님의 영광만이 드러나는 교회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서로가 자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우기며 갈등하고 분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끊임없이 물어야 합니다. “누가 우리의 머리인가?” 그 답에 예수가 아니라면, 그곳은 교회가 아님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결론

그럼에도 교회는 이 땅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머리되시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그리스도께서 진정으로 바라시는 교회만 될 수 있다면, 주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공동체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교회 송은정권사님이야말로 정말 매력적인 분이십니다. 그분의 자녀 둘이 대기업에 취직해서가 아닙니다. 좋은 직장이나 멋진 몸매를 가져서가 아닙니다. 그분은 올해만 해도 사비를 들여서 콩을 80kg을 구입해 시간이 날 때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콩물을 만듭니다. 그렇게 정성을 들여 만든 콩물을 필요한 사람, 복음 전도를 위해 무료로 나눠주고 계십니다. 세상에 이렇게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바보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분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 많은 분들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사랑스러운 바보로 살아가기를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이기주의가 만연한 이 시대 속에서 교회는 참으로 매력적인 공동체입니다.

이제 우리는 31년 나이만 자랑할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중심이 되시는 교회를 세우기 위해 모두가 낮아지고 그리스도만을 높이기를 더욱 힘써야 하겠습니다. 차가운 지식만 자랑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으로 섬기는 교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생육하고 번성하여 믿음의 후손이 가득한 교회, 교회의 본질인 복음 전도와 선교의 사명을 다하는 교회, 나의 소유와 따뜻한 마음을 끊임없이 낮은 곳으로 흘려보내는 교회, 다음 세대를 믿음으로 세우는 거룩한 공동체가 되어서 코로나19로 절망에 빠진 세상에 희망의 등불이 되는 순천화평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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