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 회 소 개 목사님과 함께 구 역 나 눔 교회사역/영상 교 회 학 교 화평 나눔터
 
목양수필
담임목사주일설교
금주의구역공과
목양일기

 

:

예수님을 만나보세요
2021-08-28 23:34:37 강동열목사 31  

 

예수님을 만나보세요

요한복음 1:35-42

<한국 기독교회사>를 쓴 연세대학교 민경배 교수는 그의 책의 머리말에서 우리 민족이 복음을 만나게 된 배경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19세기 아세아의 긴박한 국제적 긴장 속에서 한국은 워낙 힘이 없었고 아무도 도울 이 없었다. 그런 비운과 좌절감이 엄습할 때, 이 겨레가 돌아가서 기대어 손 붙잡을 곳은 교회 밖에 없다고 느낀 때가 있었다.” 그렇습니다. 우리나라가 조선 말엽 개화기를 지나 일제 식민지와 6.25를 지나 산업화를 이루기까지 민족의 희망은 교회였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고향교회는 마을 서북 방향의 산 중턱 대나무 밭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름이면 대밭모기가 들끓었고, 겨울에는 해가 빨리 져서 매우 추웠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젊은이들의 꿈의 전당이었습니다. 비록 농사일을 거들고 소를 먹이느라 꼬질꼬질했지만, 많은 어린이들이 주일 오전 9시 예배와 오후 2시 예배는 물론이고 해거름에 드리는 수요예배까지 부지런히 모여 말씀을 들었습니다. 학생들은 토요일 밤 모임은 당연하고, 주일에는 어른들이 드리는 모든 예배에 동일하게 참석하였습니다. 매년 농한기인 한 겨울에 부흥회가 열리면 얘 어른 할 것 없이 예배당을 꽉 채우고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PPT 같은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시절,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창호지로 만든 괘도에 쓴 찬송가를 보고 손에 불이 날 정도로 뜨겁게 박수치며 찬송을 부르며 한 시간씩 손을 들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때 모인 성도님들 대부분이 가난하고 못 배웠으니 오늘날 성도들처럼 세련되고 성숙한 기도는 아닐지라도, 뜨거운 소원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당시에 모인 청소년들의 간절한 소원은 오직 한 가지, 주님을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성령 충만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그렇게 주님을 만난 이들 가운데 저를 포함해서 4명의 목회자와 다수의 훌륭한 교회 지도자들이 나왔습니다.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만일 저의 고향 마을에 교회가 세워지지 않아서 복음을 들을 기회가 없었더라면,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나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모르긴 해도 조상 대대로 섬겨오던 우상을 숭배하며, 아버지의 유전자를 물려받아 술과 죄악 가운데서 어둠의 길을 방황하면서 멸망의 길을 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늘 여러분들과 이렇게 행복하고 거룩한 교회 공동체를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의 빛이신 주님께서 저를 만나주셔서 오늘의 축복된 삶을 경험하고 있으니 이 무슨 은혜인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감사할 뿐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도 예수님을 만나 이런 행복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본문은 예수님의 처음 제자들이 예수님과 만나는 장면입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과의 만남, 사도 요한과 안드레의 예수님과의 만남 그리고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과의 만남입니다. 오늘은 예수님과의 만남이 갖는 의미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A. 메시아와의 만남

가장 먼저 예수님을 만난 안드레는 예수님을 만난 소감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1: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아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여기서 우리가 주의 깊게 생각할 것은, 그가 그냥 예수를 만났다고 말하지 않고 메시아를 만났다고 고백했다는 사실입니다.

메시아는 본래 히브리어(아람어)이며, 헬라어로는 그리스도입니다. 이는 기름부음 받으신 이이라는 의미입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어떤 자리에 취임할 때 기름부음을 받는 세 유형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 번째 유형은 입니다. 왕은 다스리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과 인류의 역사는 소위 다스리는 지도자(옛날의 왕)를 지속적으로 경험해 왔지만, 그 결과는 언제나 실망과 좌절의 역사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그 어느 날 하나님께서 직접 기름 부어 세우셔서 당신의 뜻을 실현할 공의로운 왕을 기다려왔습니다.

기름부음 받는 두 번째 유형은 선지자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계획을 가르치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역사를 들여다보면 참된 선지자들도 얼마 있어서 부분적인 것들을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어둠이 짙어질수록 거짓 선지자로 가득 차서 진리를 상실한 채 어둠을 방황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직접 기름 부어 세워서 그들을 참된 진리로 가르칠 온전한 선지자의 등장을 기다렸습니다.

기름부음 받는 마지막 유형은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서 죄와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중재자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약에서 만나는 모든 제사장들은 자기의 죄 문제 해결을 위해 제물을 필요로 했던 불완전한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역사의 때가 찬 시각(카이로스)에 마침내 하나님께서 직접 기름 부어 주실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의 사명을 함께 실현할 분을 기려왔습니다. 그것이 바로 메시아, 곧 그리스도를 향한 기다림입니다. 그런데 지금 안드레가 그의 형제 베드로에게 내가 그런 메시아를 만났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고백을 듣고 예수님께 나왔던 베드로 역시 훗날 동일한 고백을 하게 됩니다.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님은 진실로 나를 공의로 다스릴 왕이요, 나를 진리로 인도할 선지자이시며, 나의 죄와 내 인생의 모든 문제의 해결자인 대제사장이라는 고백입니다. 한 마디로 예수는 나의 구원자라는 고백인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은 바로 이런 구원자와의 만남입니다. 이보다 더 위대하고 중요한 만남이 어디 있겠습니까? 과거의 어떤 종교도, 어떤 철학도, 어떤 심오한 사상도 제공하지 못한 구원이 예수를 만난 이들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메시아 예수를 믿는 것은 단순한 세상 종교 중의 하나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메시아 예수를 믿는 것은 왕이신 하나님의 거룩하고 복된 통치를 받는 일이며, 어둔 세상에서 하나님의 놀랍고 복된 뜻을 깨달아 순종의 삶을 사는 것이며, 인생의 궁극적인 문제인 죄와 사망의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는 구세주와의 위대한 만남인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과 만남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B. 선교적인 삶의 시작

예수를 구원자로 만난 사람들의 공통된 특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결코 잠잠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내 인생을 구원해 주신 분을 만났는데 어떻게 잠잠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그렇게 하라고 지시하지 않아도 자기를 만나는 사람들에게 안드레처럼 내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말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전도인의 마인드요 선교적인 삶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의 만남이 가져오는 두 번째 중요한 특징은 선교적인 삶을 시작한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만났다고 하면서 예수를 증언하지 않거나 전도할 마음이 없다면, 결론은 하나입니다. 그가 비록 교회를 여러 해 다녔다고 할지라도, 혹은 심지어 교회에서 직분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예수님을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전도와 선교의 가장 확실한 정의를 얻습니다. (1: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이 구절의 처음이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입니다. 누가 누구를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까? 안드레가 그의 형제 베드로를 데리고 예수님께로 왔습니다.

한 영혼을 예수님께 데리고 오는 것그것이 바로 선도요 선교의 핵심입니다. 단순하게 교회로만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로 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람들은 만나서 예수님에게로 인도하는 일에 헌신한 자들입니다. 한 평생 그렇게 살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모든 곳에서,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메시아 되신 예수님에게로 인도하고자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선교적인 삶입니다. 예수님을 만났다는 말은 바로 나에게 이 선교적인 삶이 시작되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1910, 한국 선교 25주년이 되던 해에 당시 한국 교인의 총 숫자는 20만 명을 돌파합니다. 그러자 이 부흥에 고무된 각 교파의 지도자들이 모여 1910320일 주일을 계기로 소위 백만인 구령 운동을 시작합니다. 20만 명의 성도들이 100만 명을 전도하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전략으로 첫째, 전국 주요 교회와 공적인 장소에서 대중 전도 집회를 갖는 일. 둘째, 모든 성도들이 복음서와 전도지를 갖고 다니며 배부하는 일. 그리고 셋째가 흥미롭습니다. 이 전도 사역의 성취를 위해 뜻 있는 모든 성도들이 날 연보를 드리기로 한 것입니다. 시간 되는 대로 어떤 사람은 일주일에 하루, 어떤 사람은 이틀, 혹은 사흘 그 이상을 자발적으로 작정해서 밖에 나가 복음을 전하고자 작정한 것입니다. 이것을 날 연보라고 했습니다.

이런 전도 운동의 영향으로 우리가 속한 교단을 설립했던 () 김치선 목사님은 신학교에서 설교할 때마다 “28천 동네에 가서 우물을 파라고 외치고 또 외쳤습니다. 28,000 동네인가 하면 당시 우리나라의 행정구역의 최소 단위가 28,000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선교적인 가르침에 감동 받은 수많은 신학생들이 빈손이었지만 오직 믿음으로 전국에 흩어져 복음을 전하여 수많은 교회를 세워 이 땅의 하나님나라 확장에 이바지했고, 우리 교회 역시 그 가운데 하나로 세워졌습니다. 전도 없이 구원이 없고, 선교 없이 교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예수의 사람은 전도의 사람이요, 참된 그리스도의 교회는 선교하는 교회입니다. 교회가 선교의 사명을 망각하면 존재 목적을 상실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땅 끝까지 증인이 되라는 주님의 명령을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에 자만하지 말고 앞으로도 기회 있는 대로 힘을 다하여 더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고, 교회 없는 마을에 교회를 세우므로 예수 만난 사람들의 본문을 다해야 할 줄 믿습니다.

C. 위대한 변화의 시작

예수님과의 만남은 곧 메시아와의 만남이고, 선교적인 삶의 시작이면서 동시에 위대한 변화의 시작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베드로는 본래 성격적으로 안정감이 없고 자주 말을 바꾸던 심약한 기질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도 한동안 그런 본성을 지속해 왔음을 복음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 그를 처음 보신 예수님께서 놀라운 선언을 하셨습니다. (1:42b) “...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그의 본명은 시몬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게바(아람어) 혹은 베드로(헬라어), 곧 반석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장차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만났어도 우리가 당장 성자로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그러나 진지하게 예수님을 따르다 보면 마침내 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처럼 심약한 사람이 초대 교회의 기초를 놓는 반석과 같은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입니다. 이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많은 사회에서는 그 사회 및 국가가 변화되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개인 구원을 넘어서 사회 구원의 희망도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복음의 능력은 다양한 곳에서 나타나, 그들이 속한 공동체를 아름답게 변화시킵니다.

안홍기 목사의 <하나님의 용서>라는 책이 있습니다. 저자인 안홍기 목사는 아버지가 장로였지만, 어릴 때 장래 희망이 조폭 두목이었을 정도로 망나니로 살았습니다. 하루는 목사님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리며 난리를 피웠습니다. 그리고 횡설수설하면서도 자신의 마음이 괴롭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목사님은 일주일 뒤에 멀쩡한 정신으로 찾아온 그를 야단치면서, 아직 인생의 끝이 아니니 10년만 예수를 제대로 믿어보라고 권면했습니다. 만약 제대로 믿은 후에도 하나님이 복을 주시지 않는다면 다 보상해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후 10년간 그는 정말 제대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교회 버스 운전을 비롯한 궂은일을 하면서 기도 생활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상상하지 못한 복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는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에 들어가 신학을 공부한 이후에 목회자가 됩니다. 그리고 중국으로 가서 선교 사역을 시작합니다. 그곳에서 건달과 조폭들을 모아 전도하고 교회를 세웁니다. 남미 아이티에 지진이 났을 때도 그 현장을 찾아갑니다. 거기서도 부랑아와 폭력배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전도를 합니다. 그러던 중 2013517, 주위 사람들의 권면으로 국내에서도 조폭들을 전도하기 위해 글로벌 찬양의 교회라는 조폭 교회를 개척합니다. 사역이 확장되어 현재는 교도소 재소자들을 전도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를 만나면 반드시 변화됩니다. 진정한 변화는 내 수련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난 예수께서 내 인생의 주인이 되시면 성령이 역사하셔서 자연스러운 열매로 나타납니다. 예수님을 만나기를 사모하는 여러분들의 삶 속에 위대한 변화의 역사가 시작되고 완성에 이르기까지 이끄시는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결론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종교학 시험에 단 하나의 문제가 출제되었습니다. “가나 혼인잔치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기적을 신학적 관점에서 해석하라학생들이 나름대로 답안을 작성하는 동안, 한 학생만 우두커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교수가 왜 답안을 작성하지 않나?” 묻자 학생은 저는 쓸 말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교수가 그래도 한 줄이라도 쓰면 낙제는 면할 건데.”라고 하자 학생은 즉시 단 한 줄의 답을 썼습니다. “물이 그 주인을 만나니 얼굴이 붉어지더라.” 이 한 줄로 만점을 받은 이가 훗날 영국의 위대한 낭만파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입니다.

사람은 누구를 만나 동행하느냐에 따라 삶이 좌우됩니다. 자음은 모음을 만나야 글자가 되고, 작은 불꽃은 바람을 만나야 큰 불꽃이 됩니다. 칼이 어머니를 만나면 요리에 쓰이고, 도둑을 만나면 사람을 해치는데 사용됩니다. 폐가전제품이 백남준과 만나면 예술품이 되고, 길가의 바윗돌이 미켈란젤로를 만나면 다윗상이 됩니다. 철이 철을 만나면 더욱 날카로워지지만, 철이 물을 만나면 녹이 습니다. ‘작은 태양이라는 뜻의 천하장사 삼손이 이라는 뜻의 델릴라를 만났다가 두 눈이 뽑히고 영혼은 어둠의 골짜기를 방황해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금 누구와 만나 동행하고 계십니까? 부활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이십니까? 아니면 사망에 이르게 하는 어둠의 세상입니까? 부디 메시아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받으십시오. 그 구원의 예수를 전하십시오. 그리고 그 구원자 예수로 말미암아 위대한 삶의 변화를 경험하고 완성을 향하여 달려가는 화평의 가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예수님을 믿기 위하여
  외치는 자의 소리
익금화평교회
청산화평교회
옥룡화평교회
연소화평교회
조도화평낙도선교센터
한국교회를 지키자. 신천지 OUT !
성경쓰기/암송
주제별성경
성경인물사전

42명
162480명

Address : 58005 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 상성길 330-4 (동순천IC입구)
Tel : 061-722-5253 E-Mail : peace-vision@hanmail.net
CopyRight ⓒ 2004 - 2021 All Rights Reserved By 순천화평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