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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첫 표적
2021-09-11 22:56:15 강동열목사 37  

 

예수님의 첫 표적

요한복음 2:1-11

로또에 당첨되려면 6개의 번호가 모두 일치해야 합니다. 1등의 당첨 확률은 1/8,145,060으로 대략 8백만 분의 1입니다. 이 확률은 벼락을 맞고도 운 좋게 살아난 사람이 다시 벼락을 맞을 확률보다 낮다고 합니다. 그래서 로또에 당첨되면 기적이 일어났다고 말합니다.

아마 여기 계신 분들도 자기 삶에 이런 기적이 한 번쯤은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다른 기적이 아니라, 2 병에 단단히 걸린 내 자식이 닫았던 마음의 문을 열고 밝은 얼굴로 나와서 부모님께 순종하며, 게임이나 기타 중독을 딱 끊어버리고 학업에 열중하며, 주일이면 예수 안 믿는 친구까지 전도해서 함께 교회 간다면, 아마 로또 당첨보다 더 기적이라고 하며 행복해 할 것입니다.

기적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miracle’미소를 짓게 하는 멋진 일을 의미하는 라틴어 ‘miraculm’(미라쿠룸)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잘 아는 대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예수님의 기적을 본문은 기적대신 표적’(sign)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2: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헬라어 성경도 기적(teras) 대신에 표적을 의미하는 단어인 shmei'on’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표적은 무슨 뜻일까요? 표적은 겉으로 드러난 현상 너머로 그 사건이 지시하는 다른 중요한 것을 가리키는 표지를 의미합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면 거리의 여러 표지판들을 봅니다. 그러나 그 표지, 곧 사인이 실체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광주에서 내려오다가 순천 15km가 새겨진 표지가 있다면, 그것이 순천 자체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다만 순천으로 가는 길을 지시할 따름입니다.

그렇다면 요한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표적들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그에 대한 답을 함께 읽겠습니다. (20:30-31) “(30)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31)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복음에 기록된 표적들은 예수께서 행하신 많은 기적들 가운데 두 가지 특별한 목적을 위해 선택된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는 것이고, 둘째는 그 예수의 이름을 힘입어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나타난 물이 포도주로 변화된 예수님의 첫 표적이 가르치는 진정한 교훈을 무엇일까요?

A. 참된 기쁨의 삶으로 인도하시는 예수님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의 결혼식에 사용된 포도주는 사치품이 아니라 필수품이었습니다. 팔레스타인 땅의 지하수는 석회질이 다량 용해되어 있어서 포도로 숙성시킨 다음 물을 희석시켜 음료수로 사용했습니다. 특별히 성경 시대 잔치에서는 포도주가 없으면 잔치가 성립되지 않았습니다. 마치 목포나 신안 사람들에게 홍어가 없으면 결혼식 잔치를 열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하면 쉽겠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포도주는 기쁨의 상징이었습니다. (104:15)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윤택하게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는 양식을 주셨도다.” 유대인 랍비들은 지금도 이 속담을 즐겨 사용합니다. “포도주 없이는 기쁨도 없다네.”(Without wine, there is no joy)

그런데 기쁨으로 가득해야 할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에 최대 위기가 발생했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진 것입니다. 곧 잔치가 중단될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사실상 잔치는 끝난 것입니다. 그럼에도 잔치는 계속될 수 있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그 이유는 예수님이 거기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 잔칫집에서 예수님을 초대했기 때문입니다. (2: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요한복음 1장 후반부에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들이 묘사되었습니다. 안드레를 부르시고, 시몬 베드로와 빌립을 부르시고, 1장 마지막에는 나다나엘이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 나다나엘은 1장에 출현한 다음에 요한복음에 자취를 감추었다가. 마지막 장인 21장에 등장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디베랴(혹은 갈릴리) 호수에 찾아오셔서 만나 주신 당신의 제자들의 명단에 나다나엘의 이름이 나옵니다. (21:2)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그러니까 나다나엘은 지금 혼인 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갈릴리 가나 출신이었던 것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혼인 잔치는 거의 일주일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가나에서 6km 정도 떨어진 갈릴리 나사렛 출신인 예수님과 그 모친도 어떤 연유에 의해서 그 잔치에 초대되었고 예수의 제자들도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잔칫집에 포도주가 떨어져서 잔치를 중단할 수밖에 없는 위기가 발생한 것입니다. 마을이 작아서 어디서 그 많은 포도주를 구입해 올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그 잔치에 초대되어 오신 예수님께서 거기 계셨기에 그 잔치는 중단되지 않고 계속될 수 있었습니다.

이 세상은 위기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접하는 거의 모든 뉴스는 굿 뉴스가 아니라 베드 뉴스입니다. 좋은 소식이 아니라, 우리를 낙심하게 하는 슬픈 소식이 그치질 않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위기들을 극복하고 기쁨의 축제를 계속하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국가가 더 많은 권력으로 사회 질서를 바로 잡으면 가능할까요? 개인은 국가로부터 재난 지원금을 계속 받아야 지속적으로 행복할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을 초대하는 것입니다. 10, 혹은 20년 전에 믿었던 추억의 예수님이 아니라, 오늘 나의 삶의 현장에 그분을 주빈으로 초대하십시오. 2천 년 전, 갈릴리에서 기적을 베푸셨던 주님께 우리 인생의 운전대를 온전히 맡기고 그분의 인도를 따라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은 기쁨의 잔치는 계속될 수 있습니다. 인생의 위기 가운데서 주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기쁨이 지속되는 기적이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B. 구원의 기쁨을 주시는 예수님

예수님의 첫 표적은 분명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에 참여한 모두에게 큰 기쁨을 선물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기적은 그 이상의 기쁨을 제공합니다. 그것은 바로 구원의 기쁨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이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마음에 영접하면서 누리는 가장 큰 기쁨은 죄를 용서 받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구원의 기쁨입니다.

그런데 만일 하나님의 백성이 범죄하게 되면 동시에 그 마음속에서 상실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구원의 기쁨입니다. 기래서 유부녀 밧세바를 취하고 그녀의 남편우리아를 전쟁 최전선에 고립시켜 죽게 하는 죄를 범했던 다윗이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51: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세상에서 경험하는 모든 기쁨 중에 가장 위대하고 고상한 기쁨은 오직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경험할 수 있는 구원의 기쁨입니다.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기적을 본 제자들은 그분이 진실로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이심을 확신하게 됩니다. (2: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그래서 여기에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라고 기록된 것입니다.

당시 제자들의 입장으로 돌아가 봅시다. 제자들은 그들을 부르신 예수님께서 물로 만드신 포도주를 마시면서 느꼈던 기쁨과, 그 표적을 통해 예수가 이스라엘 민족과 그들이 그토록 기다려오던 메시아라는 사실을 알고 믿었을 때 느낀 기쁨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컸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연히 예수의 메시아 되심을 믿고 구원받은 기쁨이 지속 가능하고 큰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 그들의 종교는 유대교였습니다. 유대교는 율법의 계명을 따라 살면 구원을 받는다는 교리를 가지고 백성들의 삶을 율법으로 꽁꽁 묶어버렸습니다. 물론 그들에게 도덕적 삶의 표준과 가이드라인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 축복이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구원의 영적 생명이 주는 기쁨은 없었습니다.

그것은 유대교만의 한계가 아닙니다. 실상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 모든 도적의 한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위 건전한 일반 종교도 어느 정도 도덕적 삶과 순간적인 위로와 기쁨을 줄 수는 있지만, 단언하건데 신앙의 모조품인 세상 종교에는 구원이 없으며 영원한 생명이 없으므로 참 기쁨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마치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칫집에 놓여 있던 여섯 개의 비어 있는 돌 항아리처럼, 특히 우리는 도덕군자의 나라를 자처하지만 마음은 텅 비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평소에는 성인군자처럼 행세하지만, 삶에 위기가 닥쳐오고 공허해지면 너무도 쉽게 깨지고 무너져 내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꼐서 우리 마음 가운데 오셔서 말씀의 물이 부어져 예수를 구주로 믿는 순간, 우리 마음에서 물이 변하여 포도주로 변화하는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더 이상 율법의 사람이 아니라, 예수의 사람에게 부어지는 구원의 기쁨과 감격이 날마다 새롭게 될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의 첫 표적이 제공하는 두 번째 교훈은 예수를 구주로 믿는 자마다 이런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요한복음 1010절에서 약속하신 풍성한 삶을 문자 그대로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10:10)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그렇습니다.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께 나아온 사람들에게 약속된 삶, 풍성한 포도주 같은 더욱 풍성한 영생의 기쁨이 여러분의 심령 속에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

C. 영원한 연합의 기쁨을 기대하게 하시는 예수님

그날 그 기적의 결과는 그 잔치의 주인공인 신랑과 신부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었을까요? 여기서 우리는 가나의 결혼식에 참석하신 예수님께서 그날의 주인공들이었던 신랑과 신부의 연합을 축복하셨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본문이 시작되는 첫 구절에서 이 기적이 사흘 째 되던 날 시작되었다고 증언합니다. (2: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여기서 사흘 째 되던 날이 정확하게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견해가 다양합니다. 어떤 이들은 나다나엘을 부르신 지 사흘째 되던 날이라고 주장하고, 또 어떤 이들은 혼인잔치 셋째 날에 주님께서 참석하셨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유대인들의 전통을 아는 이들이 제시한 해석입니다. 전통적인 유대인들은 한 주간을 맞이할 때 우리처럼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이 아니라,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엿새 동안 창조하시고 안식일에 쉬신 그 순서를 따라서 그렇게 부릅니다.

그런데 정통 유대인들은 6일간의 날들 중에 결혼식 일자로 사흘 째 되는 날(화용일)을 선호합니다. 왜냐하면 그날이 창조주 하나님께서 땅을 향해 열매와 과목을 내라고 명하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땅에서 움이 돋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날, 이 얼마나 아름다운 날입니까? 또한 다른 창조의 날에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표현이 한 번씩만 기록되어 있는데 반하여 셋째 날에는 10절과 12절에 걸쳐 두 번이나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기쁨이 배나 더했던 셋째 날을 부부의 연합을 축복할 만한 날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본문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15장에서 성도인 우리가 누리는 최고의 축복을 가지 된 우리가 포도나무이신 주님에게 붙어 이루는 아름다운 연합이라고 가르칩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 우리가 주님 안에 있어 열매를 맺는 연합의 축복이야말로 성도가 누릴 가장 큰 기쁨이라고 말씀합니다. (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와 구원받는 사건은 궁극적으로 우리와 주님과의 영원한 영적인 연합을 낳습니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향해 한 남자와 여자의 하나 됨의 연합을 비밀, 곧 영적 신비라고 말합니다. (5:31-32) “(31)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32)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남녀의 결합의 비밀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와 그의 신부인 교회의 영적 연합의 신비를 보여준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고 믿는 순간부터 우리는 예수님과 일종의 약혼 관계에 들어서는 것입니다. 약혼하여 사랑하는 남녀에게 최고의 날은 둘이 결혼하여 완전한 부부가 되는 것인 것처럼, 성도인 우리에게도 약속된 최고의 날이 다가올 것입니다. 그 최고의 날을 가리켜 요한 사도는 그의 마지막 서신인 요한계시록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19: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리고 때가 찬 그 어느 날, 예수께서 예비하신 저 천국에서 그리스도와 영원하고 완전한 연합하게 될 것입니다. (19: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그렇습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는 영원한 잔치의 그림자였던 것입니다. 그날의 신랑은 우리 주님이시고, 우리는 그의 신부가 되어 영원토록 즐거워하며 그분과 온전히 하나가 되는 기쁨 속에 들어갈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영원한 소망입니다. 가나 혼인잔치는 장차 성도들이 누릴 영원한 천국 잔치의 표적이었던 것입니다.

성도인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참 기쁨의 날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그날, 우리가 그토록 사랑하고 그리워했던 주님과 온전히 하나가 되어 영원한 생명의 참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계신 우리 모두는 늙어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하면 안 됩니다. “이렇게 좋은 세상 놔두고 나 죽기 싫어!”

결론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주님을 이 시간 여러분의 삶의 주빈으로 초청하십시오. 그 주님께서 우리의 기쁨이 중단되지 않게 하시고 마르지 않는 구원의 즐거움을 선물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가나의 혼인잔치에 손님으로 참석하셨던 주님과 하나님나라에서 영원한 연합을 이루어 천국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날이 이르기까지 주님 안에 거하시기를 가나 혼인잔치에 참석하셔서 기적을 베푸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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