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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들에게 믿음의 가정을
2022-04-30 23:31:42 강도열목사 86  

 

자녀들에게 믿음의 가정을

창세기 24:1-9

할아버지는 영어로 아버지라는 단어 앞에 ‘grand’라는 형용사가 붙어 있습니다. (grandfather = grand + father) 그랜드는 웅장한’, ‘장엄한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손자들에게 할아버지 할머니는 무엇이 그렇게 웅장하고 장엄하게 느껴지게 하는 걸까요? 명절 같은 때 두둑한 용돈을 주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함께 하시는 증거를 가진 축복의 삶을 살아갈 때, 자손들의 마음속에 위대한 어른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옆 사람과 인사를 나누겠습니다. 웅장하고 장엄한 믿음의 조상이 됩시다.

이 시간 여러분들에게 훌륭한 조부모가 되는 비결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자식들을 속히 결혼 시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어린이주일이 되면 어린이를 사랑과 믿음으로 키우는 주제로 설교해 왔지만, 오늘은 조금 다른 접근입니다. 우리 교회 개척 1세대들의 가장 큰 고민은 자녀들의 취업과 결혼인데, 오늘은 결혼 이야기입니다.

어떤 남자가 배우자감으로 좋은가라는 연구 결과를 토대로 쓴 글이 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못생겨도 성실한 남자가 제일이랍니다. 인기 속에서 살아가는 꽃미남보다는 외모가 조금 못해도 성실한 남자가 낫다는 것입니다. 잘 생긴데다 성실하기까지 한 남자가 있다면 좋겠지만,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런 남자는 찾기 어렵다지요. 시쳇말로 꽃미남은 인물값을 꼭 한답니다. 실제로 미국 테네시대학의 제임스 맥널티 박사 팀은 꽃미남일수록 가정생활이 덜 행복하다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신혼부부 82쌍을 조사한 결과 남자의 외모가 여자보다 매력적인 부부일수록 결혼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최고의 만남은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이것이 복 중의 복입니다. 그리고 그 복이 후대에까지 이어지기 위해서는 배우자를 잘 만나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주 안에서 함께 영적 후사를 낳고 길러 낼 믿음의 배필을 만나야 합니다. 이 세상은 악하고 음란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알지 못하면 남자든지, 여자든지 이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특별히 잘 생기고 예쁜 사람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인물값 꼭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너무 외모 따라가지 마십시오. 못생기고 가시투성이인 수컷 가시고기는 바위틈에 붙어서 새끼를 돌보다가 자기 몸까지 내어 주지 않습니까?

결혼할 때, 상대의 외모보다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신앙 결혼을 해야 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마지막 사역이자 가장 중요한 사역이 바로 자녀를 믿음 안에서 결혼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자녀의 결혼에서 부모의 역할은 절대적입니다. “서로 좋으면 됐지하는 안일한 생각을 버리십시오. 자녀로 하여금 믿음의 배우자를 만나게 하려면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늙어서까지 범사에 복을 받는 부모가 되라(1-2)

본문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24:1)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아브라함이 100세에 아들 이삭을 얻었고(21:5). 그의 아내 사라가 127세에 죽습니다(23:1). 그리고 2-3년 후부터 이삭의 짝 찾기를 시작해서 아브라함이 140세에, 이삭이 40세에 리브가를 아내로 맞이합니다(25:20).

범사에 복을 주셨다는 말씀에서 은 히브리어 바라크로서 여호와를 가까이 섬기면서 경배하고 찬양하는 복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의 인생에 시련도 많았지만, 주님은 때마다 그와 함께 하시면서 그를 도우셨습니다. 재물도 주시고, 자녀도 주시고, 나아가서 메시아의 조상으로 세움 받는 복까지 주셨습니다.

세월이 흘러 이삭의 시대가 오기 직전, 아브라함의 삶을 정리하는 한 구절이 바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입니다. 이 얼마나 복된 인생입니까! 여러분도 인생 마지막에 여호와께서 범사에 복을 주셨던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런 은총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범사에 복을 주셨다라는 구절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할까요? 로마서 4장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4: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아브라함은 후손을 바랄 수 없는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약속대로 주실 줄 믿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아브라함이 처음부터 대단한 삶을 산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치졸하고 박복한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날들을 지나오면서 점점 요동함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믿었고, 하나님의 시간을 따라서 그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경험하면서 신앙이 성장했습니다. 수많은 사건들을 만나도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점점 성숙해 갔습니다. 마침내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마지막 시험에서는 요동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받은 복의 절정이었습니다.

여호와께 범사에 복을 받았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아니하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기대하며 그분을 예배함으로 범사에 복을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리하여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내 삶이 찍힌 하나님의 발자국을 보여줄 수 있는 축복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받은 축복 중의 하나는 신실한 종, 엘리에셀이었습니다. (24:2) “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 허벅지 밑에 네 손을 넣으라.”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약속하신 믿음의 조상이 되기 위해서는 아들이 결혼하여 그 후손을 보아야 했기에 아브라함은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을 불러 이삭의 짝을 찾는 일을 맡깁니다.

이 늙은 종은 지난 날 아브라함이 상속자로 삼으려고 했던 엘리에셀로 추정됩니다(15:2). 본문 당시 그는 70-80세가량의 노인으로서, 60여 년을 아브라함과 함께 일한 신실하고 충성스러운 종이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소유를 맡길 만한 동역자가 있었다는 것은 아브라함이 재물을 내려놓고 이타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아브라함의 조카 롯 곁에는 믿을만한 동역자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아브라함과 달리 롯은 마지막까지 재물을 내려놓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결국 부인마저 소금 기둥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19:26). 인생 후반으로 갈수록 무서운 것이 곁에 사람이 없어지는 외로움입니다. 입은 닫고 지갑을 여는 사람에게는 함께 하는 사람이 많지만, 입만 열고 지갑을 닫는 사람에게는 사람이 떠나는 법입니다.

아브라함의 노년에 이르기까지 그의 곁을 지켰던 종 엘리에셀은 주인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 주인의 허벅지 아래에 손을 넣고 맹세했습니다. 당시에 생식의 상징인 사타구니에 손을 넣어 맹세하는 것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키겠다는 뜻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런 신실한 동역자 덕분에 아들 이삭이 믿음의 결혼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선한 동역자를 보내 주십니다. 제 아내가 701호 아주머니를 섬기고자 마음을 먹었더니, 하나님께서 그 일에 함께 할 동역자들을 붙여 주셔서 지치지 않고 더 잘 섬기고 있습니다. 우리가 감히 에에 앰뷸런스를 띄워 죽어가는 선교사 생명을 구할 생각을 했더니 하나님께서 수많은 동역자들을 붙여 주셨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하나님께 믿음을 보이므로 범사에 복을 받은 증거가 있는 장엄하고 위대한 부모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B. 분명한 원칙을 사수하는 부모가 되라(3-5)

두 번째로 아브라함에게는 분명한 원칙이 있었습니다. (24:3-4) “(3)내가 너에게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내가 거주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4)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장엄하고 위대한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불신 결혼은 절대 안 된다는 확고한 원칙을 가져야 합니다. 배우자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한 조건은 믿는 족속인가, 아닌가입니다. ‘가나안 족속인가, 내 고향 족속인가이것이 관건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가나안 여인은 절대 안 된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렇게 분명한 원칙을 세운 이유는, 사라에게서 난 아들이아니라면 영적 후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지나온 인생을 통해 철저하게 학습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갈이 아무 고민도 없이 아들 이스마엘을 애굽 여인과 결혼시키는 것을 보면서, 믿음의 결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은 것입니다(21:21).

아브라함은 그랄 왕 아비멜렉과 교분을 맺기도 했고, 햇 족속 에브론과 친밀함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가나안 족속과 무역하고 거래도 했습니다. 만일 그들의 딸과 혼인으로 묶인다면 부족 사회에서 안전도 보장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들과의 결혼을 거절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결코 세상과 섞여서는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갈대아 우리에 살면서 월신(月神)을 섬겼습니다(24:2). 그러면 가나안과 아브라함의 고향이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당시 가나안의 우상숭배는 극에 달했습니다. 문란하고 부패하기가 그지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의 고향과는 비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아브라함 고향인 하란 사람들의 행위가 의로워서 그중에서 신붓감을 고르라는 말이 아닙니다. 리브가의 오라버니 라반도 얼마나 욕심이 사나운 사람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은 비록 온전하지는 않지만, 하나님을 믿는 흔적이 있었습니다. 그 예로 라반이 야곱과 언약을 세우면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31:53)이라고 말했습니다. 비록 욕심이 사납고 믿음이 떨어져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족속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 사람이나 저기 사람이나 다 거기서 거기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사람 중에서 배우자를 택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혈통에서 예수님이 나실 것이기 때문에 예수 씨를 골라야 합니다. 불신자라도 이왕이면 믿음의 근거가 있는 사람을 택해야 합니다. 아예 무신론자보다는 무엇을 믿는 사람이 더 낫습니다. 무언인가라도 믿는 사람은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절대자를 의지하는 겸손함이라도 있는데, 무신론자는 자기가 신입니다. 최고의 우상숭배는 자기를 믿는 것입니다.

특별히 행위가 올발라서 내 고향 내 족속 중에서 데려오라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콩가루 같은 족속이라도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 있었기에 아브라함이 엘리에셀을 그곳으로 보내어 며느리를 구해 오라고 명령했던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아브라함은 말씀에 의거해서 결혼의 원칙을 세웠습니다. 창세기 925절에서도 에서도, 1516절에서도 하나님은 가나안을 향해 멸망당할 족속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멸망한 세상과 어찌 혼인 관계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내가 선 곳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가나안 사람, 세상 사람을 선택해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을 변화시킬 동역자는 오직 하늘나라 시민권자뿐입니다.

이스마엘도 아브라함의 자손인데 어머니 하갈이 애굽 여인이다 보니 그 자녀를 믿음으로 세우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가 정말 중요합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계보는 모계를 따릅니다. 헬라인 아버지를 둔 디모데도 유대인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의 신앙 교육(딤후1:5) 덕분에 바울 사역에 크게 동역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내 고향, 내 족속에서 배우자를 택하라고 하니까 국제결혼은 안 됩니까묻는 분도 있습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아서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녀 결혼에서 중요한 원칙은 오직 믿는 자인가, 아닌가입니다. 이 원칙을 확고하게 정하고 가르치고 실천할 때, 비로소 장엄하고 위대한 조상이 될 줄 믿습니다.

C. 불신결혼과 타협하지 않는 부모가 되라(5-9)

마지막으로 불신앙 결혼과 타협하지 않는 부모가 되십시오. (24:5) “종이 이르되 여자가 나를 따라 이 땅으로 오려고 하지 아니하거든 내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이 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돌아가리이까.” 아브라함이 내 고향 내 조속 중에서 이삭의 아내를 택하라고 명령하자 종이 묻습니다. “만일 색시가 안 따라오면 이삭을 데리고 그곳으로 가야 할까요?” 이는 곧 너무 좋은 배필감인데, 예수 안 믿는 것 하나 빼고는 다 좋은데, 그러면 데리고 와서 믿게 할까요?”하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대답합니다. (24:6)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아니하도록 하라 이 말은 곧 그의 환경과 조건이 아무리 좋을지라도 예수를 믿어야 한다라는 의미입니다. 사랑 때문에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결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24:7)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고향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본인에게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결혼의 목적은 땅과 씨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땅, 가나안을 정복하려면 믿음의 자손들이 이어져야 합니다. 믿음의 후사를 낳기 위해 결혼해야 한다는 겁니다. 결혼도 구원 때문에 해야 합니다. 하나님나라의 지경을 넓히기 위해서, 영적 자손을 생산하기 위해서 결혼해야 합니다.

결혼의 조건 중에서 사랑을 우선하지 마십시오. 다만 구원 때문에 선택한 결혼이라면 사랑의 창조자이신 하나님께서 풍성한 사랑을 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나는 이 사람이 아니면 죽을 것 같습니까? 그런 건 없습니다. “하나님이 결혼시키시면 하고 안 시키시면 안 하겠다!” 이것이 믿는 자의 태도입니다.

또 결혼할 때 항상 부모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떤 부모는 예수 잘 믿는다고 하면서도 교회 형제와 딸의 결혼을 반대합니다. 형제의 직업이 못마땅하다는 이유입니다. 그러면서 내가 기도해 보니 너희가 결혼하면 하나님이 치신대하며 딸을 겁박합니다. 물론 부모를 거슬러 내 맘대로 결혼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이 부모는 믿음을 빙자해 기복을 강요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자를 앞서 보내어 엘리에셀의 길을 인도하신 것처럼 믿음의 배우자를 얻기 위해 기도하고 순종하는 자에게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예비하실 줄 믿습니다.

아브라함이 거듭 강조합니다. (24:8) “만일 여자가 너를 따라 오려고 하지 아니하면 나의 이 맹세가 너와 상관이 없나니 오직 내 아들을 데리고 그리로 가지 말지니라.” 만일 여자가 따라오지 않는다고 해도 아들은 결코 보낼 수 없다는 뜻입니다.

요즘 이혼 사유 1위가 성생활이 맞지 않아서라고 합니다. 그래서 미리 살아보고 맞으면 결혼한다는 사조가 팽배합니다. 사실 성생활이 막혀서 부부관계가 나빠지는 것이 아니라, 부부관계가 막히기 때문에 성생활도 막히는 것입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생활을 이유로 헤어지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결혼 전 동거한 경험이 있는 부부가 이혼 확률이 더 높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교회 다니는 청년들이라고 다릅니까? 자기 멋대로 불신결혼을 하고는 갖은 이유를 대면서 바람피우고 이혼합니다. 예수를 제대로 믿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내 자녀가 순결한 가정,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을 이루려면 자녀뿐 아니라 부모부터 아브라함 같은 믿음의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자기들끼리 좋으면 됐지라는 말은 영적 후사에는 관심이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결혼은 정말 잘 해야 합니다. 내 눈에 보기 좋은 꽃미남, 꽃 미녀라고 덥석 결혼했다가는 큰 코 닥칩니다. 얼굴값을 치르기 위해 온갖 전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상대의 집안, 학벌, 재력, 외모가 아닙니다. 앉으나 서나 믿음을 보아야 합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붙여 주신 사람인가, 아닌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내게 육적인 유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붙여주신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성경 어디에도 온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아브라함, 야곱, 다윗 모두 치졸한 사람들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죄와 부족을 보는 사람인가 아닌가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대의 특징을 악하고 음란하다라고 딱 두 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행위가 아니라 나는 이렇게 예수 믿었다는 신앙고백이 배우자를 고르는 조건이 되어야 합니다. “아버지가 술 마시고 바람 피워서 힘들었는데, 그런 아버지의 죄가 내게도 흘러 내려와 나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자기 죄를 고백할 줄 아는 사람이 합당한 배우자감입니다. 심지어는 창기라도 자기가 죄인임을 아는 사람이 나는 죄가 없다면서 모든 조건을 갖춘 사람보다 훨씬 낫습니다. “우리 집 만큼 좋은 집안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이렇게 자랑하는 집이 가장 나쁜 집안입니다. 나의 죄와 부족을 아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라도 불신 결혼과 타협하지 않고 오직 믿음의 가문을 세우기 위해 애쓰는 위대한 믿음의 조상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결론

자녀의 결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고향 내 족속인가, 아닌가입니다. 자녀 불신결혼은 전적으로 부모의 책임입니다. 부모가 불신자라도 괜찮다라는 가치관을 어려서부터 심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말로만 불신결혼은 안 된다고 하면서 가치관은 세상을 따르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또 율법적으로 신앙결혼만 부르짖어도 안 됩니다. 그러면 오히려 자녀가 튕겨 나갑니다. 신앙결혼이 왜 좋은지 온몸으로 살아내며 보여 주어야 합니다.

내 자녀를 영적 후사로 키워 내려면 부모가 먼저 신앙 안에서 잘 살아야 합니다. 부모가 주 안에서 사랑하고 믿음으로 가정을 지켜야 합니다. 내 대()에서 모든 저주가 끝나고 자녀를 신앙결혼 시키기 위해서 지금부터라도 분명한 원칙을 가지고 타협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부디 믿음의 후사를 세우는 데까지 나아가 범사에 복을 받은 증거가 가득한 장엄한 믿음의 부모들이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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